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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영원한 고전 <논어>(論語)

<논어>는 촌철살인처럼 다가와 장편소설처럼 자리 잡는 인류의 가르침이다. 책이라는 관점에서만 보아도 <논어>는 동양 고전의 은하계를 낳은 주역이다. 많은 책들이 <논어>를 중심으로 태어났고 읽혀지고 빛난다. <논어>와 공자는 언제나 새로운 동양의 고전, 단지 중국의 책과 사상가에 그치지 않는다.

<논어>에 서서히 빠져들다
80년대 중반, 국문학과 대학원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한문에 능통해야 했다. 학부 내내 외국 문학 이론을 배경 삼고 철저한 작품 분석을 통해 언어예술의 심연과 진경을 포착하려 애쓰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선배들을 통해서 입수한 대학원 입학시험의 한문 문제는 별도로 준비하지 않으면 통과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A4 용지 한 장짜리 원문을 한글로 옮겨 내라는 주문이 있는가 하면, <귀거래사(歸去來辭)> 같은 작품을 원문 그대로 외워 쓰라는 요구도 있었다. 바로 전해에는 <적벽부(赤壁賦)>를 외워 쓰라는 문제가 나오기도 했다.

다행히 고등학교 때 한자 공부를 그럭저럭 한 데다가 어렸을 때부터 온통 한자투성이였던 갖가지 책들을 읽어서 그런지 한문 공부가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대학원에 가겠다고 일찍부터 결심했기에 미리 틈틈이 공부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대학원 입학시험을 몇 개월 앞두고는 <논어>와 <맹자>를 열심히 읽고 또 읽었다. <고문진보(古文眞寶)>도 공부했고 시험에 나올 만한 명문들도 외웠다. 다행히 대학원 시험에 통과했다.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전공하면서부터 그나마 띄엄띄엄 읽을 수 있었던 한문 해독 능력은 급속도로 사라졌다. 열심히 외웠던 명문 원문들 또한 가물가물해졌다. 20년도 더 지난 지금은 도대체 무엇을 공부했는지조차 모를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공부했던 <논어>의 구절들은 늘 가슴속에 남아 있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마라”(己所不欲 勿施於人),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를 ‘잘못’이라 한다”(過而不改 是謂過矣),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군자는 두루 잘 어울리고 끼리끼리 모이지 않으며, 소인은 끼리끼리 모이고 두루 어울리지 못한다”(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최근 <논어>를 다시 읽다 보니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논어>가 내게 미친 영향이 엄청나구나. 나의 삶과 인간관계, 실천과 행동 등 다방면에 걸쳐서 <논어>는 늘 나와 함께해 왔구나. 대학원 입시를 위해 갖은 애를 다 쓰며 읽고 외우기 전부터, 또한 한문 해독 능력이 사라져 가면서도. 그래. 나는 <논어>를 읽기 전부터 <논어>를 만났고, <논어>를 읽은 후부터 <논어>를 다시 읽고 삶과 함께 새로 써 왔구나. 영원한 ‘학생(學生)’으로서 나는 <논어>를 만나고, 읽고, 써 왔구나.

비단 나뿐이랴. <논어>는 촌철살인처럼 다가와 장편소설처럼 자리 잡는 인류의 가르침. 책이라는 관점에서만 보아도 <논어>는 동양 고전의 은하계를 낳은 주역이다. 많은 책들이 <논어>를 중심으로 태어났고 읽히고 빛난다. <논어>와 공자는 언제나 새로운 동양의 고전, 단지 중국의 책과 사상가에 그치지 않는다.

<논어> 읽기와 인간 공자 만나기
<논어>를 읽는 길은 여러 갈래다. 하지만 언제나 <논어>는 공자를 읽는 궁극적인 텍스트임을 기억해야 한다. <논어>는 공자와 제자가 나눈 대화 가운데 제자들이 골라 모은 대화록. 공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형식이기에 공자가 어느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말했는가 곱씹으면서 <논어>를 읽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공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빨리 버려야 한다. 공자는 결단코 케케묵은 도덕 타령이나 하고 있던 샌님이 아니다. 공자는 딱딱하고 고루한 과거의 사상이 아니라, 지금 당장 텍스트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생동감 있는 가르침이다.

실제로 <논어>의 주역인 공자는 언제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제자들과 대화를 나눈다. 텍스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자의 모습은 실감 날 정도다. 그는 제자들 앞에서 자신의 모자람조차 솔직하게 드러낸다.

성이니, 인이니 하는 경지를 내 어찌 감당하랴? 다만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기를 싫어하지 않고, 남을 남자도 가르치기에 게으르지 않은 것이라면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자 공서화가 말하였다. 이것이 바로 저희 저희들이 배울 수 없는 점입니다.(若聖與仁 則吾豈敢. 抑爲之不厭 誨人不倦 則可謂云爾已矣. 公西華曰 正唯弟子不能學也)

이러한 겸손함은 제자인 안회(顔回)를 자신과 동급으로 공개적으로 존중하기도 하고, 그가 요절했을 때는 그만 평상심을 잃고 너무나 슬퍼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아!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噫, 天喪予, 天喪予)

제자를 아끼던 공자의 모습은 ‘공문십철(孔門十哲)’의 존재에서 유감없이 드러난다. 공자가 자신이 직접 거명한 수제자 열 명과 나눈 대화들을 읽다 보면 존경할 만한 교사와 그를 따르는 열 명의 빼어난 제자들이 만나는 장면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공자가 자신의 후계자로까지 생각했던 최고 우등생 안회(顔回). 과묵하며 한결같아 공자가 좋아하던 민자건(閔子騫), 덕행에 뛰어났으나 훗날 나병 환자가 되어 학업을 중단했던 염백우(伯牛)와 중궁(仲弓), 말솜씨가 뛰어났으나 공자에게 늘 꾸중을 맞았던 재아(宰我), 뛰어난 언어능력을 과시하여 외교와 이재(理財)에 실력을 보였던 자공(子貢), 정사(政事)에 능력을 보인 염유(有), 성정이 급하고 용감했던 자로(子路),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자유(子游)와 자하(子夏). 공자가 중시한 네 가지 분야는 특별히 ‘공문사과(孔門四科)’라 부르기도 한다.

德行(顔淵, 閔子騫, 伯牛, 仲弓), 言語(宰我, 子貢), 政事(有, 季路), 文學(子游, 子夏)

결국 <논어>를 읽다 보면 교사들을 위한 일종의 드라마 ‘학교’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교사는 어떻게 제자들을 가르치고 대해야 하는가. 이에 관하여 공자를 치밀하게 분석하면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교사 공자의 교수법을 찾아 낼 수 있다.

“공자의 가르침은 형식상으로는 직접적인 개인 지도 방식이고, 내용상으로는 이른바 대기 설법(對機說法)이었다. 흔히 석가모니 붓다의 전용 교수법으로 알려진 대기 설법은 듣는 이의 수준에 맞추어서 그 가르침의 내용을 달리하는 것이다.”(<논어-사람 속에서 찾은 사람의 길>, 진현종 풀어씀, 풀빛, 37쪽)

공자는 개념이나 정의부터 말하며 어렵게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물어보는 이의 수준과 상황에 맞춰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천적인 조언을 해 줄 뿐이다. ‘인(仁)’에 관한 똑같은 질문에 서로 다르게 답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방식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천적이었기 때문에, 그 제자들이 인에 대해서 물어볼 때마다 한결같이 “인은 모든 덕목의 총체다”처럼 개념적인 차원의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지금 묻고 있는 그 제자에게 결핍되어 있거나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점을 답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예를 들자면 앞에 나온 자장은 정치에 관심이 많은 제자였으므로 공자는 주로 대인 관계와 정치 분야에서 요구되는 인의 내용을 알려준 것이며, 사마우는 말이 많고 따지기를 좋아하는 성품이었기에 인의 내용을 우선 입조심에 국한시켜 말해준 것이다.”(<논어-사람 속에서 찾은 사람의 길>, 39쪽)

감탄도 하고 자문자답도 하며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공자의 모습은 그대로 교사, 인류의 스승으로서 당당히 자리 잡는다. <논어>의 맨 앞에 ‘학이(學而)’편이 나오고, 그 첫 마디가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易悅乎)’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논어>는 결국 공자의 삶과 교훈이 배움과 익힘, 기쁨으로 요약되며 이것이 가장 인간적인 가르침이라는 제자들의 선언인 셈이다.(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溫온 不亦君子乎)

공자와 <논어> 읽기의 필수 전제 - 주석과 번역
공자의 출생과 사망은 언제인지 정확하지 않다. 물론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552년 10월 21일 또는 551년 11월 21일에 태어나 기원전 479년 5월 11일에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의 사쿠 야스시(佐久協) 같은 사람은 왕과 제후조차도 생년월일이 분명치 않았던 시대이니 이 정도 기록조차 공자에 대한 신격화가 얼마나 강렬했는지 보여 준다고 말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공자세가’ 편에 공자의 일생이 자세히 나오는데 이 역시 사쿠 야스시도 말했듯이 대단한 신분 격상의 증거다. 본래 ‘세가(世家)’란 제후의 전기인데 제후의 신하인 배신(陪臣)의 신분이었던 공자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공자와 <논어>에 대한 존경과 추앙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강해져 우상화의 폐단까지 낳았다. 그 결과 <논어>에 나오는 공자는 인간 공자에서 성인 공자로 절대화된다. 이를 더욱 부추긴 것은 <논어>에 대한 주석(註釋) 작업이다.

공자와 제자들 간의 대화를 골라 모은 텍스트가 <논어>이다 보니 대화의 맥락을 파악하고 본뜻을 명료하게 다지고 풍부하게 덧붙이는 주석 작업을 하려면 공자와 <논어>를 제대로 읽는 작업이 필요했던 것.

“<논어>는 수많은 주석서가 있다. 하안의 <논어집해>를 ‘고주’라 하고 주희의 <논어집주>를 ‘신주’라 하여 중요하게 여긴다. 조선의 정약용이 지은 <논어고금주(論語古今注)>에서는 고주와 신주에서 각기 보이는 폐단을 극복하고 보다 합리적이고 공자의 원의에 가까운 해석을 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당시 조선에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오규 소라이, 이토 진사이와 같은 일본 유학자의 주석에까지 고루 시야를 넓힌 점은 정약용의 유연하고 개방적인 사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인터넷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인용)

여기서 <논어집주(論語集註)>는 남송 시대의 거유(巨儒)인 주희가 <사서집주(四書集註)>안에 담겼는데 이후 공자와 <논어>의 해석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결과 공자와 <논어>를 폭넓고 자유롭게 해석하는 데 결정적인 장애가 되기도 한다.

<논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 작업 또한 만만치 않았다. 16세기 <논어언해>에서 비롯된 <논어> 번역은 수없이 이루어져 왔다. 지금 대략 160여 종이 시중에 나와 있으며, 절판된 경우까지 따지면 300여 종, 제목에 <논어>가 들어간 책까지 따지면 500여 종을 넘을 정도로 엄청난 <논어> 번역본과 관련서들이 있다. 너무나 많아 번역본 <논어>의 옥석을 가리기 힘들 정도다.

한마디로, 원문 <논어>에 수많은 주석이 오랜 세월 동안 덧붙여지면서 우리에게 다가왔으며,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번역본들이 등장하여 <논어> 읽기, 즉 공자를 제대로 읽기 힘들게 만든 것이다.

결국 동양의 영원한 고전인 <논어>는 가장 읽기 힘든 고전이 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 몇 년 전부터 고전 번역을 평가하는 번역 비평이 전공 교수들을 비롯한 관계 전문가들 사이에서 싹트게 된 것은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전문가가 평가하는 <논어>의 최고 번역본은 어떤 책일까?

“최남선 이후 지금까지의 <논어> 번역사에서 단연 돋보이는 <논어> 번역서로는 1974년 박영사에서 문고판으로 간행한 이을호 역 <한글 논어>를 들 수 있다. 이을호 역은 원문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하게 우리의 일상 언어로 바꾸어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운 대화체를 사용함으로써 마치 공자의 육성을 직접 듣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번역했다. 또한 간결하고 명료하며 원문과의 대칭적 구조까지 살렸다는 점에서 절묘한 번역이라 할 만하다. 또 이을호 역은 삶의 문법이 분명히 보이는 번역으로 당시 65세, 막 정년을 앞둔 권위의 굴레를 벗고 일상으로 다가오는 공자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앞으로 <논어>를 번역할 이들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탁월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 황희경, 교수신문 엮음, 생각의 나무, 14쪽)

하지만 가장 좋은 <논어>는 역시 삶 속에서 스스로의 사색과 실천으로 길어 올리는 책이다. 즉, <논어>가 절대 고정된 텍스트가 아니듯이 가장 훌륭한 <논어>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 서로 배우고, 익히며, 기뻐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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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만한 <논어> 입문서 한 권 :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배병삼 풀어씀, 사계절)

<논어> 스무 편을 각 편마다 한두 가지 주제를 정하여 에세이 형식으로 쓴 것으로 가볍게 <논어> 전편을 섭렵하며 사색에 잠기고 싶다면 안성맞춤의 책이다. <논어>에 대한 이공과 내력이 잘 배어 있다.

책 앞뒤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형식을 취해서 <논어>에 대한 사전 이해와 마무리 설명을 시도한다. ‘<논어> 여행을 위한 준비’라는 제목으로 선비들의 삶과 사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논어>의 위력에 대해 성삼문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논어>의 지혜를 제대로 깨달으려면 시대에 맞게 경쾌하게 읽어 가는 것이 좋다고 귀띔한다. <논어>를 깊숙이 읽어 보면 춘추 시대라는 대혼란기에 ‘인간을 중시하는 세계’를 꿈꾸었던 공자와 제자들의 소탈한 진면목을 우리 시대에 맞게 읽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본(底本)이 된 책은 풀어쓴 이의 또 다른 책, <한글세대가 본 논어 1, 2>(배병삼, 문학동네)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옷깃은 여미고 눈은 치켜뜨라”라는 역설적 문장의 <논어> 읽기를 주장한다. ‘옷깃을 여미라’는 말은 텍스트 이해를 긴절하게 하라, ‘눈은 치켜뜨라’는 텍스트 해석을 치열하게 하라는 뜻.

‘<논어>의 이해와 해석을 경쾌하게 시도한 이 책을 디딤돌 삼아 다시 <논어>에 대한 분석과 해체를 시도하고, 다시 <논어> 위에 건설한 국가인 조선의 사상사 해석, 나아가 곧 맞이할 통일국가의 정치 철학을 <논어>를 바탕으로 살펴보겠다는 것’이 저자의 의도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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