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대리만족나이 40을 목전에 둔 솔로 선배가 얼마 전 통화 중 꺼낸 얘기.
“얘~ 나 요즘 ‘우리 결혼했어요’보는 낙으로 산다. 내가 못한 결혼, 걔들이 대신해서 살아주지 않니. 걔들이 내 유일한 기쁨이야~.”
사실 저는 그때까지 ‘우리 결혼했어요’가 TV프로그램인 줄도 몰랐습니다. 선배와의 통화 이후부터는 챙겨보게 됐지만요.
선배는 가수인 솔비-앤디 커플의 티격태격, 알콩달콩 부부행세가 너무 귀엽다고 말합니다. 앤디가 음식이 묻은 솔비의 입가를 닦아 준다던지, 남편행세 하겠다며 집안 꾸미고 정리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확률적으로 본인에게는 그런 일이 생길 수는 없으니, 대리만족을 실컷 하고 있답니다.
위로의 말이라도 건넨다고 “언니, 왜 그래~ 어디선가 인연이 나타날 거야. 기다려봐”라고 읊었습니다만, 전혀 위로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죠. 헌데 이 결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역할놀이를 통해 노처녀들뿐만 아니라 한참 공부하는 어린 학생들도 ‘결혼 로망’을 꿈꾸게 됐다니, 이거 좀 문제긴 문제네요.
결혼의 신성함은 어디로?

결혼 전에는 절대 각방을 쓰고, 이혼하면 집안의 씻지 못할 오명을 남기는 자식으로 묘사하던 가족, 연애 드라마도 이젠 현 세태를 반영하듯 다양하게 변모해왔죠. 결혼 전에 동거를 하기도 하고, 이제는 이혼녀나 미혼모가 역경을 딛고 재기에 성공하는 스토리가 식상해질 정도니까요. 실제로 혼전에 아이를 가진 연예인들도 감추기보다는 사실을 공개하기도 하고요. 물론 감추고 쉬쉬하느니 오픈하는 것이 거짓궤변을 늘어놓는 것보다 나아 보입니다.
이런 세태를 현실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는 건 어느 정도 필요한 과정이라 보입니다. 그러나 인정의 범주를 넘어서,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지는 않을까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사랑의 결실이라 일컬어지는 결혼, 사랑을 하며 상대방에 대해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가는 결혼생활을 너무 쉽고 간단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닐지 말입니다.
롤플레잉은 역할놀이일 뿐, 오해하지 말자자장라면 한 가닥 서로 입에 물고 닿을 듯 말 듯 장난하는 그들의 연애행각은 설정된 연출을 통해 연애와 결혼생활을 이벤트성으로 풀어 재미를 주는 프로그램일 뿐, 실제의 결혼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걸 알고 계시죠? 요즘 가부장 마초 콘셉트로 네티즌으로부터 무시무시한 질타를 받고 있다는 코미디언 정형돈씨 역시 이 설정 때문에 안티가 늘고 있다나요?
어찌됐든 아무도 건드려주지 않았던 결혼과 관련된 리얼 버라이어티쇼 덕분에 ‘결혼하고 싶다’는 처녀, 총각이 늘어난 건 고무적인 현상인 듯합니다. 후배 N양은 결혼한 친구들로부터 ‘절대 결혼하지 말아라’, ‘결혼하면 여자는 희생만 하게 된다’, ‘육아와 사회생활 병행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해봐야 알지’등등 그간 좋지 않은 소리만 잔뜩 들어 결혼에 대한 환상이 이미 다 깨져버린 찰나, ‘우리 결혼했어요’를 시청하고 ‘결혼하면 이런 장점도 있겠구나!’라는 걸 살포시 깨달았답니다.
그러고 보면 주변의 기혼자들은 결혼의 좋은 점보다는 단점 위주로 싱글들에게 넋두리를 전파하는 듯합니다. N양은 기혼자가 누리기 힘들어진 미혼 때의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으로 싱글인 본인에게 ‘결혼무용론’을 말하는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전하긴 했습니다만, 설마 결혼이 무용하면 이 땅의 가족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서로를 보듬고 살겠습니까? 싱글은 커플을 부러워하고 기혼자는 미혼일 때를 그리워하며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애틋함을 품는 정도이겠지요.
따가운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이 성큼 다가왔네요. 싱글 선생님 여러분들도 이글거리는 더위 아래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 열정적으로 연애하는 여름이 되시기를 바래봅니다. |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