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는 분들은 실감하실 겁니다. 작년 하반기의 ‘테엘미~ 테엘미~ 테테테테테~테엘미’ 텔미 열풍을. 해가 바뀌었으니 요즘 이슈라 하기엔 조금 철 지난 듯해도, 2007년 하반기 키워드 중 하나가 ‘텔미’였을 정도로 메가톤급 이슈가 아니었나 싶어 다시 얘기 꺼내봅니다.
조카뻘 또는 막내여동생뻘 되는 다섯 명의 소녀가 어깨를 살랑거리며, 복고풍의 원색의상을 입고 등장한 가을께만 해도, 그녀들의 ‘텔미’가 전국적 열풍이 불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더랬습니다. ‘텔미’의 멜로디와 팔찌춤은 원더걸스 다섯 소녀를 국민여동생으로 자리매김시키며 연예인에 시들해있던 오빠부대(또는 삼촌부대)를 다시 TV 앞에 불러앉힙니다. 텔미가 7주연속 1위를 차지하던 시기엔 세대를 막론하고 어느 노래방에서나 친숙하게 불려지는 곡이기도 했죠. 연말 각종시상식에서 소위 잘나간다는 연예인, 아나운서까지 ‘텔미’를 따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였고요. TV와 신문, 잡지에서도 ‘텔미’는 하나의 사회현상인 양 ‘신드롬’화시켰습니다. 점심먹고 자리에 돌아와 온라인 뉴스 검색을 하던 시간에 원더걸스의 막둥이 소희 양의 ‘어머나’ 윙크 부분 위주로 텔미동영상을 한 번 돌려보는 것이, 즐거운 오후를 위한 상큼한 청량제가 된다는 동료도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왜 '텔미'인가?후렴구의 반복적인 멜로디, 약간(?)만 노력하면 출 수 있는 어깨춤이나, 팔찌춤 동작. 따라하기 쉬운 노래와 안무가 ‘텔미’ 가 주목받는 가장 주효한 이유라 언론에선 입을 모읍니다. 실제로 원더걸스 열혈 팬인 동료, 친구, 선후배에게 ‘텔미의 인기비결’을 질문해본 결과도 대략 비슷했습니다. ‘테테테텔~ 텔미’ 하는 후렴구의 중독성, 이렇다 할 여성아이돌 그룹이 부재한 상황에 섹시미와 신비주의를 대신 옆집 동생 캐릭터를 택한 편안하면서도 개성 있는 어린 처자들이 살랑거리며 추는 귀여운 율동을 공통적으로 꼽았습니다. 그러나 노랫말, 율동, 어린 처자의 매력보다 더 인기 있는 이유가 있었으니, 평소 점잖은 줄로만 알았던 사람들이 의외의 ‘텔미매니아’가 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시츄에이션 때문이라고 하네요. 생각해보세요. 인자하고 후덕하신 어느 선생님께서 ‘텔미’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면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흔들고 계신 모습을….
탈 권위의 시대, 표현의 시대작년 말 송년회를 준비하던 한 지인의 회사에는 사장님의특명이 내려졌답니다. 다름아닌 송년회 특별게스트로 ‘원더걸스’를 섭외하라는 것이었지요. 직원들 사기 진작 차원에서 생각한 아이디어라 했지만, 40대 중반 사장님도 실은 텔미 마니아라고 고백하셨다는군요. ‘원더걸스’ 섭외는 실패했지만, 송년회에서 약간의 팔찌춤을 선보인 후 사장님은 직원들에게 ‘급호감완소 CEO’로 대변신하였답니다. 텔미의 인기가 상승할 때마다 가짓수가 늘어났던 여러 가지 버전의 UCC 텔미동영상도 기억하실 겁니다. 군인 텔미, 고3 텔미, 발레 텔미, 경찰 텔미 등등 넷인프라와 영상기기의 IT환경에 너무도 익숙한 세대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거부감 없이 자연스레 표현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네요.
‘텔미’라는 가요 한 곡으로 세대 간의 벽을 허문다는 건 어불성설이겠지만, 지난 연말 여러 모임에서 수도 없이 ‘텔미’를 부르고 추고 감상하며 확실히 알게 모르게 존재했던 세대 간 거리감은 조금 사라진 듯합니다. 가사를 다 외우고, 춤을 완벽하게 따라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더군요. 찌르기 춤이 약간은 어색하더라도 ‘텔미’를 부르는 본인도 즐겁고 동료나 선후배도 즐겁게 해주려는 기성세대의 노력, 그것이 참 고마웠던 겁니다.
2008년에는 또 어떤 히트이슈가 탄생할까요?‘텔미’처럼 대국민 열풍이 불만한 히트곡이나 또 다른 유행이 새롭게 등장하겠지요. 우리가 모두 고단하고 힘들 때, 한층 웃고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이슈면 더행복할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텔미와 관련되어 가장 재미있었던 짤막한 에피소드 하나 들려드리며 마무리하죠. 듣다가, 따라부르다가 보다가, 따라추는 텔미중독의 수순을 그대로 밟은 30대 후반의 선배가 남긴 얘기.
“내가 첫사랑에 실패만 안 했어도 소희만한 딸이 있었을 텐데…. 그 딸 같은 애들의 노래에 어깨를 들썩이는 나 대체 뭐니? ㅋㅋㅋ 그래도 텔미 느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