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팔선’(38세 퇴직),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회사 다니면 도둑놈 소리를 듣는다) 같은 유행어가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세상의 분위기입니다. 경력 10년을 넘긴 직장인이라면 하나같이 직장에서의 미래를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 연말 당신도 혹시 ‘빨간 봉투’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나요?
“연말이 되면 빨간 봉투를 받을까봐 겁이 나. 우리 회사는 연말 구조조정 대상자에게 조용히 나가달라는 메시지를 담은 빨간 봉투를 대상자에게 보내거든. 언제 내가 그 대상이 될지 모르니 연말이 되면 아주 피가 마른다.”
얼마 전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삼팔선’(38세 퇴직),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회사 다니면 도둑놈 소리를 듣는다) 같은 유행어가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세상의 분위기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바로 자신의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서점에 나가보면 〈회사가 가르쳐주지 않는 50가지 비밀〉, 〈회사생활 잘하려면 꼭 알아야 할 77가지 비밀〉, 〈회사를 내 편으로 만드는 10가지 방법〉 등 직장인의 생존전략을 가르치는 처세서가 빼곡하게 쌓여있습니다. 이런 책들의 원조는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서돌)이라고 하는데요. 출판사 공혜진 대표 역시 연말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더군요. 경력 10년을 넘긴 친구들이 하나같이 직장에서의 미래를 불안해하더라는 거지요.
공 대표는 이런 직장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가이드북을 찾다가 〈회사의 비밀(Corporate Confidential)〉이란 책을 발견하고, 직접 번역까지 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기업 컨설턴트이자 인사전문가인 신시아 샤피로가 쓴 이 책은 정말 노골적입니다. 직장인들이 흔히 갖는 착각의 실체를 속속들이 밝혀주니 말입니다.
“능력만 뛰어나면 성공? 충성심이 없으면 어떤 기회의 문도 열리지 않는다”, “직장 동료는 가족? 당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져도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일과 가정의 균형? 회사가 대외 홍보용으로 내세우는 말을 믿는 당신은 구조조정 1순위”, “내가 옳다면 회사는 내 편? 상사와 맞서는 것은 지는 게임이다. 상사는 반드시 복수한다”…. 회사 생활 10년을 넘긴 직장인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대목이 정말 많습니다(학교에 계시는 선생님들이라면 조금 덜 수긍이 갈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직장이란 게 다 거기서 거기니 공감하실 수 있는 부분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물론 이런 종류의 책을 한 번이라도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사실 별 것은 없지 않던가요? ‘수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시크릿>(론다 번, 살림BIZ)만해도 그렇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비밀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스스로를 믿으며,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이야기뿐이니까요. 그럼에도 이런 책들이 수십만 권씩 팔려나가는 건, 제 친구처럼 다가올 연말이 당장 불안한, 그러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샐러리맨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이겠지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당신만 지켜보는 가족을 위해,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책이라도 사 보면서 강박관념을 달래며 꺾인 무릎 다시 일으켜 세워 앞으로 나아갈 밖에요. 그나저나, 제 친구 녀석, 올해도 ‘빨간 봉투’를 비켜갔으면 좋겠네요(뭐, 남 걱정 할 일은 아닌 거 같긴 합니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