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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의 행복한 실패 여행기 - 미스 리틀 선샤인

인생의 낙오자들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만 행복의 순간이 아닌 좌절의 순간을 함께하는 것이 진정한 가족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Little Miss Sunshine)〉. 가족영화이자 로드무비의 형식을 띠고 있는 이 영화는 흔한 결말이 예상되는 성공적인 여행을 통한 가족 간의 화해보다는 실패를 함께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설정으로 더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대책 없는 후버 가족의 로드무비

후버 가족은 자타가 공인하는 인생 낙오자들이다. 한 번도 성공다운 성공을 맛보지 못했으면서 ‘9단계 성공비법’을 강의하고 다닐 뿐만 아니라 가족에게 끊임없이 성공을 강요하는 아버지, 마약문제로 양로원에서 쫓겨난 채 손자에게 하루라도 젊었을 때 더 많은 섹스를 권유하는 괴짜 할아버지, 최고의 지성을 자칭하면서도 제자인 대학원생 연인에게 버림받아 수시로 자살을 시도하는 게이 삼촌, 격무에 시달리며 이런 가족들까지 책임져야 하는 지친 엄마, 이 모든 가족들이 끔찍하게 싫어 공군사관학교에 갈 때까지 침묵을 맹세한 오빠,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인대회에 나갈 꿈에 부푼 올챙이배를 가진 막내 올리브가 바로 후버 패밀리다.

세상에 가족만큼 사랑과 증오라는 극단적인 감정이 뒤엉켜 있는 집단이 또 어디에 있을까? 누구보다 많은 시·공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친밀함을 이유로 서로 간의 다름이라는 차이를 존중하지 않고 끊임없는 강요와 간섭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가족관계는 사람에 따라 차가운 익명의 사회보다 참기 힘든 고통이 되기도 한다.

평안한 안식처로서의 가정이 지옥이 되어버린 것은 가족 구성원 각자가 서로의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살펴볼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조차 가지지 못하게 하는 분주한 일상, 치열한 경쟁사회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해체에 직면한 후버 가족의 모습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위기의 가족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서로 얼굴조차 마주치기 싫어하는 이들은 그러나 ‘미스 리틀 선샤인’을 뽑는 미인대회에 출전하게 된 올리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고, 이후 대책 없는 가족들의 좌충우돌 로드무비가 펼쳐진다.

서로의 깊은 생채기들을 만나다
영화는 짓궂게도 가족 간의 위기 해결을 위해 이들을 더욱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아넣는 극약처방을 선택한다. 올리브를 위해 마지못해 떠난 여행의 와중에 게이 삼촌은 초라한 모습으로 경쟁 학자와 함께 있는 헤어진 연인을 만나게 되고, 오빠 드웨인은 자신이 색맹이어서 비행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또 성공비법을 책으로 출판할 꿈에 부풀었던 아버지는 계약에 실패하고 만다. 게다가 미니버스의 클러치는 고장 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회장소를 코앞에 두고 할아버지는 마약 과용으로 숨을 거두고 만다.

이렇듯 좁은 미니버스 안에서 며칠의 시간을 같이 지내며, 가족들은 그간 일상의 적당한 거리감 속에 피상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서로의 깊은 생채기들과 대면하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보다 깊은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언제나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게 마련이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 위험에는 관계를 위해서 시간이나 물질과 같은 유형적인 어떤 것은 물론 자신의 연약함이나 상처, 자존심 등을 내주고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포함된다.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상대에게 다가선다고 해서 늘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에게 깊은 애정으로 끊임없이 다가서려 하는 엄마의 노력은 외면당하기 일쑤이며, 침묵에 빠진 조카를 도우려는 삼촌의 따뜻한 마음은 ‘너나 잘 하세요’라는 핀잔으로 머쓱해지곤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시도는 올리브의 아빠가 즐겨 사용하는 ‘립 서비스’에 머무는 말뿐인 관계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열린 만남의 관계를 자라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토양을 조성한다.


좌절의 순간 함께하며 희망 찾아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미스 리틀 선샤인’ 선발대회 장소에서 후버 가족은 자신들이 상상했던 동네 장기자랑 정도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대회장의 분위기와 아이들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화려한 의상, 어른 못지않은 진한 화장 그리고 깜짝 놀랄 만한 장기로 무장한 채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어린이 미인대회 현장의 풍경은 성공을 향한 어른들의 생존경쟁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비인간적인 것이었다.

가족 안에서 볼록 나온 귀여운 올챙이배를 지닌 귀엽기 짝이 없던 올리브의 모습은 반짝거리듯 치장된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볼 때 초라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이미 실패와 좌절의 순간을 맛볼 만큼 맛본 가족들은 공개적인 모욕과 망신을 당할 것이 빤한 올리브의 출전을 막으려 애쓴다. 하지만 선택은 올리브의 몫이었고, 결국 막내는 무대에 나가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엉성한 스트립쇼 안무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에 기겁한 대회 관계자들은 올리브를 무대에서 끌어내리려 하고, 이를 막기 위해 엉겁결에 무대 위로 뛰어올라간 온 가족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춤을 추고 있는 올리브의 모습을 보며 함께 ‘막춤’을 춘다. 대회장은 이내 난장판으로 변하고 온 가족이 경찰서에 끌려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짧은 며칠간의 고통스런 여행을 통해 후버 가족은 점차 깨달아가고 있었다. 진정한 가족이란 성공의 순간에만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생의 가장 밑바닥 그 좌절의 순간에 오히려 더욱 함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행 내내 후버 가족을 괴롭혔던, 클러치가 고장 난 미니버스는 이런 깨달음을 가능하게 했던 일등 공신이다. 비용과 시간문제로 도저히 차를 수리할 수 없었던 가족은 결국 기어를 바꿀 수 있을 때까지 차를 함께 밀기로 결정한다. 혼자서는 도무지 움직일 수 없는 미니버스의 모습은 낙오자 인생을 살아가는 후버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상징한다. 유일한 희망은 함께 땀을 흘리며 앞을 향해 버스를 미는 것이다.


‘소유’ 아닌 ‘존재’ 자체가 행복
이윽고 버스는 움직이고 다시 한 번 재기를 향한 힘찬 질주는 시작된다. 물론 버스는 머지않아 다시 멈출 것이다. 하지만 버스를 같이 밀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희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 힘이 바로 어린 올리브가 무대 위에서 실패의 구렁텅이로 내동댕이쳐질 그 순간에, 망신을 무릅쓰고 모든 가족이 그녀와 함께 있기를 선택하게 한 능력의 비결이다.

비록 미인대회의 낙오자이자 인생의 낙오자들로 이루어진 가족이었지만, 막내의 황당한 춤을 따라 망신당하기를 작정하고 함께 몸을 흔들며 춤추고 즐거워하는 이 대책 없는 가족들의 단란한 한때는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세상에 오직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하고 그 승패라는 것이 사회적인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보는 리차드의 믿음처럼 현실은 더 많은 ‘소유’를 가지고 있는 주류적인 인생만을 긍정하고 칭찬한다. 하지만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은 ‘소유’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서로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존재’ 자체가 삶의 진정한 행복을 이루는 원천이 된다는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그러나 평범하기에 다들 외면한 채 살아가는 생의 진실을 한 삼류가족의 실패기로 풀어낸다.

가족들이 한데 뭉쳐 모진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을 쟁취한다는 식의 대개의 주류 가족영화와 달리, 미인대회의 꼴찌라는 명백한 실패로 드러난 결말을 도리어 역설적인 성공의 장으로 여겨지게 만든 ‘비주류’적인 구성은 영화가 마지막까지 현실감을 잃지 않게 하는 매력적인 설정이다.

영화정보
제 목 : 미스 리틀 선샤인
(Little Miss Sunshine)
감 독 : 조나단 데이톤, 발레리 페리스
출 연 : 그렉 키니어, 토니 콜레트, 알란 아킨
관람등급 : 15세 관람가
제작연도 :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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