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랑드 바캉스(대휴가)라고 불리어지는 두 달 간의 방학을 보내고 9월에 시작되는 프랑스의 개학은 새로운 학사 연도의 시작이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새로운 출발의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개학 특수를 노리는 문구·출판업체들의 다양한 이벤트 행사가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일탈의 휴가 분위기를 일신시키며 일터로 그리고 학업으로 복귀한다는 의미에서, 불어로 개학은 ‘랑트레(rentree)’라고 하는데, 이는 ‘돌아온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잔뜩 더위 먹은 금년도 프랑스의 개학은 산뜻한 스타트 라인이 아니라 ‘지뢰밭’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여러 가지 불안 요소들이 매복해 있다. 이미 방학 전날 국가 교육의 주요 연합들이 개학날 모이기로 하고 파업을 예고해 정부는 이번 개학 준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지난 해 10월부터 시작된 정부가 내놓은 교육개혁안(지방교육자치제, 연금 개혁, 교육예산 삭감 등)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이미 해결을 본 것이 아니라 방학과 함께 잠시 ‘휴전’에 들어갔던 것뿐으로, 이는 개학과 함께 재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7월 28일 라파랭 총리 주재로 교육 분야를 위한 각 부처간 공동위원회를 개최했다. 20여 명의 장관이 배석한 이 자리는 지난 7월 3일부터 시작된 「학교의 미래를 위한 국민 대토론회(le grand debat national)」의 일환 2003년도 개학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학교의 권위, 폭력의 예방, 기회의 균등, 교원의 사명 등 다양한 주제가 다루어지고 있는 이 토론회는 교육을 직업으로 하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전 국민이 함께 하는 교육에 대한 범국민적 공동 성찰의 자리라는 데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를 위해 프랑스 정부는 오는 9월부터 라파랭 수상을 수반으로 하는 국가 위원회를 발족할 예정에 있으며, 우선 그 첫 단계로 현재의 학교 상태에 대한 공동의 진단서가 작성되고 있다. 앞으로 이 토론회는 내년 초까지 다양한 형태로 이어질 계획이고, 이를 토대로 교육의 방향을 정하는 법안이 내년 가을 국회에서 다뤄질 전망이다.
다만, 철학자 출신의 뤽 페리 교육부 장관은 그동안 학생 중심 교육으로 말미암아 학교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다고 보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르치고 배우는’ 전통적인 교육의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개혁 의지를 견지하고 있어, 교육개혁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데 적지 않은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각 부처간 공동위원회는 이번 토론이 학생 건강, 도로 안전 교육, 문맹 퇴치, 장애아 교육 등을 의제로 하여 수준높고 풍요롭게 진행되었다고 자평하며, 2003년 개학 현황과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좌파의 작크 랑(전임 교육부 장관)은 교원 충원 계획에 대해 사기적인 숫자 놀음이라며 비난의 화살을 쏘고 있다.
내용인 즉, 정부가 애초에 계획했던 1만 6000명에서 4000명을 추가해 2004년 1월까지 2만 명의 교육보조원에게 일자리를 주겠다고 발표한 것은 보조교사로 채용된 젊은이들의 자연스런 퇴임을 감안하면 의미가 없는 것으로, 여전히 2만 개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교육철학을 새롭게 정립하려는 프랑스 교육계의 원대한 비전의 한 옆에서 당장 발목을 잡는 것은 교원 임용과 예산 분야다. 살인적인 더위 속, 끝나지 않은 투쟁을 맞이하는 2003년도 개학은 어쩌면 가장 ‘열받은’ 개학이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