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문명사적 대전환을 맞아 고등교육의 패러다임이 요동치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한국의 대학이 위기에 처해 있다. 무엇보다도 입학할 학생수가 급격히 줄기 때문이다. 대학은 대학교수라는 집단 구성원들이 지성을 발휘하여 생존 방법을 모색하여 존재하는 생명체이다.
빌 게이츠에게 응용수학을 가르쳤던 미국 하버드대 해리 루이스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하버드가 잃어버린 교육, 대학 교육의 미래는’에서 “대학은 학생의 장래성을 키워주는 곳이다. 학교와 교수가 그걸 못해 주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게이츠는 왜 하버드대를 중퇴했을까? 루이스 교수 답변은 “명석하고 독창적인 학생이었는데 우리가 잠재력을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그는 떠났다”며 자성을 했다. 그리고 하버드가 잃어버린 것은 영혼, 바로 학생 교육에 대한 고민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세계 최고의 대학도 고민하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대학들이 그런 환경에 놓여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세계 최고의 하버드대도 공학 분야에서 스탠퍼드대에 밀리자 교육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등 비상이다. 하버드대뿐만이 아니다. 세계 고등교육계에 ‘파괴적 혁신’ 바람이 거세다. 아이비리그 수준의 강의를 반값에 공부할 수 있는 미국 온라인 대학 미네르바 스쿨이 하버드대보다 더 입학하기 어렵고, 세계 명문대 강좌를 무료로 수강하는 무크(MOOC)의 확산으로 강의실 국경도 무너지고 있다.
세계의 대학들은 천리마처럼 달리는데 우리는 어떨까. 한마디로 소걸음이다. 저출산에 따른 ‘학생 절벽’ 앞에서도 셀프 혁신에 대응하지 못하고 교육부 눈치만 보고 있다. 올해 59만 명인 고교 입학생이 내년엔 52만 명, 내후년엔 46만 명으로 줄어든다. 이건 뭘 의미하는가. 현재 대입 정원이 53만 명인데 5년 뒤 46만 명 중 80%(37만 명)가 대학에 가더라도 80곳(정원 2000명 기준)은 문을 닫아야 할 판 아닌가.
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린다. 교육부가 재정을 미끼로 구조조정을 압박하니까 억지로 시늉만 낸다. 이달 말 지원 대상 19곳을 뽑는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프라임) 사업’이 그 하이라이트다. 대학 한 곳에 연간 최대 300억원 등 3년간 6000억원을 대주는 초대형 사업이다. 대학들은 자존심도 팽개치고 군침을 흘린다. 신청 대학 70곳 중엔 교명까지 바꾼 곳도 있고, 공대를 강화한다며 정체불명의 전공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곤 점수를 잘 받으려 줄 대기에 혈안이다. 교육부의 위세가 어떻겠는가.
그렇다고 모든 대학이 죽어가는 것은 아니다. 대전 우송대의 ‘솔브릿지 국제경영대학’은 교수 35명 중 28명(80%)이 미국 하버드대 등 해외 명문대를 졸업한 외국인이다. 또 재학생 1020명 중 64%가 미국·일본·중국·케냐 등 30여 개국에서 유학왔다. 지방대에서 이 정도의 국제화 인프라를 갖춘 곳은 찾기 힘들다.
엔디컷 총장은 우송대의 국제화와 토론식 강의를 주도하고 있다. 취임 이후 지금까지 161개 해외 대학과 교류협력(MOU)을 체결했다. 교류협력을 맺은 대부분의 대학과 교환학생 또는 복수학위제(2+2시스템 등)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한 해 10여 차례 해외 출장을 다닌다. 엔디컷 총장은 “세계 여러 대학의 교육시스템을 배워 우리 대학의 경쟁력을 키우고자 하는 게 출장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우수 교수초빙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세계의 여러 자매 결연 대학에 우수 교수 추천을 요청했다. 2010년에는 하버드대 법학 박사 학위자인 조슈아 박(38) 교수를 우송대로 영입했다.
엔디컷 총장은 교육과정에서 토론 기술과 사고능력을 키워 주기 위해 ‘비평적 사고’, ‘스피치와 논쟁’, ‘비즈니스 협상’ 등을 필수과목으로 개설했다. 토론 관련 과목 강의는 국제토론대회 심사위원장 등의 경력이 있는 전문가가 맡는다. 엔디컷 총장은 “토론은 정보 가공 능력과 창의적인 사고를 기르는 데 최고의 공부 방식”이라며 “토론을 통해 주장만 내세우지 말고 자제와 관용의 자세도 함께 배울 것을 주문하고 있다.
지난 3월엔 솔브릿지 경영대학의 ‘솔브리지 토론프로그램’이 국제경영대학발전협의회(AACSB)에서 ‘혁신프로그램 상’을 받았다. AACSB 인증을 받은 세계 각국의 대학이 제출한 300개 이상의 프로그램에서 30개만 선정됐다. 동북아시아권 대학에서는 유일하다. 역시 이같은 혁신이 없이 지방대학이 살 길이 없다. 변하는 시대에 적응하는 대학만이 생존하는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