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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목소리 소설이 주는 과제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열리는 계절이다. 고향의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를 생각하기도 하고 벼 베는 아버지의 모습도 오버랩 되며, 친구들과 따서 먹을 열매를 찾아 산을 오르던 기억도 아른거린다. 이처럼 고향은 우리의 생각을 추스려 보게 한다. 그래서인지 고향이 더욱 그리워진다. 고향과 더불어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호머의 ‘일리아드’가 생각난다. 세계문학의 고향으로 불리는 ‘일리아드’ 이야기는 다 아는 것처럼 트로이 전쟁 이야기다.

이 전쟁은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후원하는 그리스군과 풍요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성원하는 트로이 사이의 전쟁이다. 아킬레우스의 분노에서 시작하여 트로이 왕자 파리스의 죽음으로 끝난다. 이 서사시에서 그리스 쪽은 주로 남성의 전쟁과 영웅의 이야기가 두드러지는 반면, 트로이 쪽은 여성의 길쌈과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테나와 아프로디테의 차이는 양쪽의 분위기를 그토록 다르게 만든다. ‘일리아드’뿐 아니라 모든 전쟁 이 야기에서 전쟁터는 남성의 몫이다. 그리고, 그 후방에서 생활하고 사랑하는 것은 주로 여성의 몫으로 다루어진다.

그러나 어디 전쟁터가 남성만의 무대이겠는가?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그런 질문을 통해 전쟁과 인간의 본성에 다가서려 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직접 전쟁을 겪은 200여 여성들의 목소리를 다성적(多聲的)으로 엮은 이야기다. 그만큼 생생하고 가슴 시린 목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생생한 목소리들은 역설적으로 허구보다 더 허구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알밤을 줍듯이 광주리에 담았다. 그녀의 체르노빌 이야기 ‘체르노빌의 목소리’도 그렇거니와, 알렉시예비치의 이야기는 주로 제국의 멸망이나 전쟁, 참사를 직접 겪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공통의 이야기, 공통의 역사를 만들려 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런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오래 남는다.

그녀는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들, 그리고 그들이 그 속에서 경험하는 믿음, 불신, 환영, 희망, 불안에 대해 써왔다. 이 작품의 장르를 ‘목소리 소설’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들은 후 이야기를 잘 조합하여 완성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자신을 ‘글쓰는 사람’으로 표현했다면, 그녀는 자신을 ‘듣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어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 대상이 그러한 여유로운 시간을 허락하지 않아 보석같은 이야기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 선조들의 삶이 바로 그러하지 않았는가! 특히 나라 없는 설움 속에 독립운동을 하거나 해외에서 살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배움이 없어 기록하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후손들이 귀감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행적이나 이상을 글로 남겨 놓으면 더 좋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좋은 귀를 지녔다는 것은 작가로서 큰 미덕인 것 같다. 제대로 듣기 전에 서둘러 판단하고, 진실을 이해하기 전에 순간의 이미지, 진실이 아닌 허황된 것들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은 세상이고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다른 이들의 경험과 고통에 진정으로 귀 기울이며 그 목소리들 사이의 현묘한 소통을 지향하기에 알렉시예비치의 이야기는 남다르다. 이 이야기는 타고난 이야기꾼의 패턴화 된 능숙함과도 거리가 멀다. 또, 과잉 이미지와 현란한 몽상적인 수사와도 분명히 구별된다. 이미지 시대를 거스르는 ‘목소리 소설’을 새삼 주목하면서 작금의 우리 문학 풍경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많은 진실들, 그리고 소설보다 더 귀한 것들이 많음에도 귀 기울이지 않아서 여전히 듣지 못한 여러 목소리들이 많이 있음에도 이미 있었던 사실과 표현의 영향으로부터 불안해 하는 어설픈 게으름에 대해서도 성찰하게 된다.

“나는 세상을 목소리와 색깔로 간주합니다. 책마다 대상이 바뀌지만 이야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같기 때문이죠. 수천 개의 목소리로 일종의 작은 백과사전, 즉 우리 세대에 대한 백과사전을 만들었죠. 이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이들이 믿은 것은 무엇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죽고 또 어떻게 살인을 했을까요? 또한 얼마나 힘들게 행복을 구했을까요? 결국 행복을 잡았을까요?” 이같은 그녀의 목소리를 거듭 들으면서 인간의 삶과 문학의 진실 문제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된다. 기회가 된다면 나도 이제 종착역에 다다른 열차에 탄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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