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사물들은 그 자체의 가치가 있다. 이 가치는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평가된다. 어느 개인이나 기업과 조직, 더 나아가 국가도 마찬가지다. 내 자신은 내가 잘 아는 것 같지만 이것도 절대적은 아니다. 그래서 나 자신이 모르는 것을 타인의 평가를 무척 궁금하게 생각한다. 나의 평가대로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살맛이 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특히 누군가가 내 자신에게 내재된 잠재력을 살펴보고 높이 평가해줄 때 자부심도 생겨 에너지가 충전된다.
“만일 한국이 담담한 심정으로 있는 그대로의 한국을 국제사회에 소개할 수 있다면 한국의 존재는 명확하게 인식될 수 있다. 그것으로부터 한국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색깔이 다른 또 하나의 멋진 선진국으로 올라서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이는 세계적 석학으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문명학 박사학위를 받은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가 한 말이다. 그는 미국인으로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이며 한국 고전문학을 20년 가까이 공부하였다.
그는 한국을 이미 선진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김연아, 조수미, 싸이 등 누가 보아도 자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된 한국인들이 많다. 또한 삼성, LG, 현대 등 세계 초우량 기업들도 많다. 그러나 아직까지 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의 정체성 은 흐릿하고 애매모호하다. 그는 선진국으로서 한국이 자신의 정체성을 국제사회에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약소국 콤플렉스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가 당당한 선진국으로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과거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우리 위상을 냉정하게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정체성을 정립해야 한다. 정체성은 수천 년 동안 지속된 우리 역사 속에서 찾아야 한다. 그의 눈에 비친 우리의 훌륭한 문화유산은 넘쳐난다는 것이다. 현대 세계인에게 모범적인 인물상을 제시할 수 있는 선비 정신, 여러 사람이 모여서 창조적 융합의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는 사랑방 문화, 흙 속에 묻힌 진주인 옛 골목과 전통시장 등이 그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래 친환경적 생태공간 창조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풍수, 세계 농업문화 혁명을 이끌 유기농법,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정신과 교육 혁명에도 주목하고 있다. 현재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한류’는 한국 문화의 상징이다.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한류는 많은 나라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한류를 매개로 서구 선진국 문화보다 훨씬 흥미로운 한국의 문화는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한류는 그저 제품을 팔고 연예계의 유행을 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형태와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는 2년 전'한국인이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저자는 책 곳곳을 통해 “한국은 국가 브랜드로 홍보하고 알릴 수 있는 엄청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나라이지만 그것을 전혀 이용하거나 살리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경제뿐 아니라 문화를 선도하는 일등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소프트파워’를 찾아내고 적극 활용해야 한다. 21세기 르네상스가 한국에서 꽃피는 상황이 생긴다고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들 안에 보물이 있는데 왜 그걸 찾으려고 하지 않나요? 그렇다 이 보물을 바로 보고 캐내는 작업이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무슨 일이 실패하면 그 요인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문제는 분명히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으며, 그것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외부로 표출된 것이다.
그는 나와 같은 관점을 지닌 한국 지식인의 인식을 다음과같이 지적하고 있다. “한국의 많은 지식인은 한국이 100여 년 전 구한말의 상황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기에 더욱 열심히 일해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지 않으면 언제 나라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경고를 만고불변의 진리나 주문처럼 외고 있다. 한국이 여기서 경제 발전을 멈추고 근면한 생활을 중단한다면 또다시 저개발 국가로 주저앉을 수 있다는 우려감은 한국에서 가장 자주 동원되는 논리다.”
그는 한국만의 대단한 전통문화가 있다고 느꼈으며, 이같은 것을 한국인은 잘 인식하지 못하거나 알아도 외국인에게 잘 안 알려주는 그런 것들을 책 속에 담았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모르는 것들로는 가령 한국은 국내 정책과 제도에 관한 한 조선 시대에 선진적인 시스템을 이미 갖고 있었다면서. 동서고금을 통틀어 그만한 규모에 그토록 오래 안정적으로 유지된 정부 시스템은 없었다는 대목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다.
또 고려 시대의 다문화 전통, 조선 시대의 민본주의와 언로, 사랑방, 조선의 역관제, 중인들의 활약상 같은 것들은 지금 다시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17-18세기 예학도 오늘날 법 적용이 어려운 네트워크사회에서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로 재해석할 수 있다. 심지어 외교적 상상력도 과거 주변 강대국을 상대해온 삼국시대나 고려 시대에서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이 이룩한 기적적인 성장이 이뤄진 것도 그 배후에 수천 년 지속해온 지적 전통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사를 이야기하면서 이 부분을 생략하는 경향이 많다. 한국이 갑자기 튀어나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한국이 지금 자랑하는 특정 기술이나 상품보다도 자신의 문화를 더 위대한 자산으로 인식한다면 한국은 세계에 훨씬 더 많이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 잠재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