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때문에 쪼개지는 대한민국이다. 이를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1970년대 말까지 경쟁입시체제였기 때문에 상위권 대학에 몇 명이 합격하는가가 명문고의 잣대였다. 당시에는 경기고·서울고·용산고 등이 명문으로 꼽혔지만 평준화정책을 실시한 후 판도가 뒤바뀌었다. 그러나 평준화도 이미 깨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30곳의 외고, 20곳의 과학고, 6곳의 자사고, 2곳의 국제고 등 특목고는 과거 명문고보다 훨씬 많은 상위권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더욱이 MB 정부에서 시작된 교육정책이 이어지면서 훨씬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자율고 설립, 학교선택제, 학교정보공시제 등으로 서울대와 연·고대 진학률까지 공개되는 등 각 학교의 수준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교육계의 양분화가 심화되면서 바야흐로 우리 교육계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휴화산과도 같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양극화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논리도 나름대로 합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열악한 지역에 우수교사를 배치하고 낙후된 시설을 개선하면 학력이 향상된다는 게 기본 논리다. 하지만 성적 경쟁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학습 저력을 형성하는 데는 본인의 의지와 능력, 주변 환경에서 비롯된 학습동기 등이 많은 영향을 준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학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의욕을 북돋워주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야 신나게 공부할 수 있다. 교사들이 학생들과 더불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꿈을 갖지 못하면 점점 위축될 뿐 아니라 모든 일에 체념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교사들은 이를 외면한다. 어떤 변화를 위한 노력에 저항을 보이는 곳도 없지 않다. 단순히 편안한 직장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이는 책임 회피이다. 이같은 환경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생겨나도록 의욕과 동기를 부여하고 꿈을 심어주어야 희망의 근거를 가질 수 있다.
일반고에서도 해외 명문대 들어갈 수 있다. 우수한 인재를 선발해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외고들은 국제반을 만들어 학생들의 해외 대학 진출을 돕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 대학에서 중시하는 내신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에세이 작성은 물론 AP(Advanced Placement : 고등학교에서 수강하는 대학 학과목) 수강반을 따로 만들어 철저하게 대비한다.
또한 대부분의 미국 명문대가 교과외 활동을 중시하기 때문에 다양한 특별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SAT에서 만점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교과외 활동이 부실하면 합격시키지 않는다. Y외고의 여학생들은 치어리딩클럽(Cheerleading club)에 가입하여 미국에서 열리는 경연대회에 참여하기도 하고, D외고의 학생들은 전미고교모의법정대회에 출전해 수백 대 일의 주 예선을 치룬 팀들과 맞서 실전감각을 키웠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서울권의 외고 학생이 해외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은 13%이고, 경기권은 9%, 지방권은 4.2%에 이른다. 교육의 지각변동으로 양극화의 현상이 심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월성 정책의 방향은 잘못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수월성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 국내에서만 통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단순히 국내 명문대를 들어가기 위한 점수 경쟁은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우리 교육계는 변해야 한다. 쓸데없는 소모전을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지고 장기적인 투자를 통해 글로벌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세계적인 인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진정한 글로벌 인재가 되어, 우리나라가 하루 빨리 막강한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를 기대한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슬로건은 '스카이를 넘어 아이비리그로!' 갈 수 있다는 꿈을 심어주는 일이다. 이 희망의 중심에 교사가 우뚝 서야 한다. 가난때문에 안된다. 시골이기에 안된다가 아니다. 누군가가 불을 지피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