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영아, 2014년 6월도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모든 게 시작이 있으니 끝이 있는 게 아니겠니? 이 지구상에는 다양한 민족들이 사는데 그 가운데 유태인은 대단한 민족이라고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분열돼 싸우다 자기들이 살던 땅에서 쫓겨났다. 그런가 하면 히틀러에게 마치 짐승같이 도살당하면서도 제대로 저항 한번 못했다. 그런 민족이 이제 인구 대비로 세계 평균의 100배에 이르는 노벨상을 타고 있단다. 매년 창업 기업의 수는 유럽 전체보다 많으며, 미국 내 유태인 1인당 소득은 우리의 20배 안팎이다.
이같은 힘은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유태인식 교육이라고 한다. 이들을 이렇게 변모시켰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이지만, 그 교육 중 특이한 한 부분에 계속 마음이 간 것은 현충일이었던 지난 6일 미얀마에서 아웅산 순국 사절 추모비 제막식에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이다.
1983년 아웅산 묘역에서 북한의 테러 공격으로 우리 나라 부총리 이하 각료와 수행원 등 17명이 숨지는 사건이 있었단다. 세계 외교사에 없었던 충격적 사태인데도 금세 잊혔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기도 하단다. 젊은 세대는 '아웅산'이 뭔지도 제대로 모른다. 이런 우리와는 정반대인 것이 유태인 교육이다.
이스라엘 학생 대부분이 고교를 졸업하기 전에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를 방문한다고 한다. 관광객이 아닌 유태인 학생들에겐 온몸이 떨리는 공포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의 장소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선대가 어떤 일을 겪었는가를 체험하도록 어른들이 교육하기 때문이다. 그 충격 속에서 많은 학생이 울음을 터뜨린다고 한다. 후유증을 겪는 학생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유태인 부모들은 자식을 그 수용소에 보낸 이유는 그 경험을 통해 아이가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이가 제 민족이 어떤 잘못으로 무슨 고난을 당했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반성하게 된다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이스라엘의 마사다 언덕은 2000년 전 유태인 저항군의 요새로 로마군에 함락되기 직전 1000명 가까운 사람이 모두 자결한 곳이다. 거기서 젊은 남녀 병사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원을 그리고 무언가를 다짐하는 모습이 남아 있다. '다시는 함락되지 않으리.' 세계 최강인 이스라엘군의 용맹은 유태인 수용소와 마사다에서 길러진 것이 아닐까? 미국에 사는 유태인들도 자식들을 마사다에 보낸다고 하는구나. 이유는 하나, 수난과 고통의 역사를 몸으로 느끼고 정신적으로 성숙하라는 것이다.
'공부하는 힘'을 쓴 황농문 서울대 교수는 "사무치는 경험으로 철이 든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한다"고 했다. 수재와 둔재는 누가 먼저 철이 들었느냐의 차이라고도 했다. 나라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잘못을 가르치고 배워서 철이 든 나라는 그렇지 못한 나라와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게 된다.
8·15는 우리에게 경축일이지만, 일본엔 패망일이다. 일본인들은 세계가 비난하는데도 8·15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 말은 하지 않아도 '8·15를 잊지 말자'는 것이라 생각한다. 당연히 우리에게도 일본에 당한 패망일이 있다. 8·29다. 황후가 궁궐에서 외국 깡패들에게 능욕당하고 죽임을 당한 날(10·8)을 기억하는 국민은 얼마나 되는가. 불행히도 5년 정도 세월이 흐르면 세월호 사건도 다 잊혀질까 걱정이 된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대구 지하철 화재, 서해훼리호 모두가 그랬다. 수난과 고통, 수치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민족은 반드시 그 역사를 되풀이한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라. 나는 거기에 없다. 나는 잠들지 않는다. 나는 이제 바람, 햇빛, 빗물이다….' 윤병세 외교장관이 아웅산 추모비 추도사에서 인용한 옛 시의 원문이다. 추모비 틈 너머의 햇빛과 빗방울과 바람이 '국민 여러분, 우리는 잠들지 않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잠들지 않아야 한다. 우리에겐 많은 성취가 있었으나 수난과 수치도 너무나 많았다. 수난의 역사, 고통의 역사가 바람, 햇빛, 빗물처럼 언제나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켜보게 해야 한다. 상대를 영원히 증오하자는 것이 아니다. 언제까지나 자학하고 자괴하자는 것도 아니다. 우리 아이들과 후손들이 그 속에서 국민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성숙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런 각성으로 나라가 진정으로 철이 들게 되면 오욕의 역사는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는다. 유태인 못지않은 비약도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다.
많은 분들의 집념으로 31년 만에 아웅산 현장에 세워진 추모비는 쉽게 망각하는 우리 습성에 비춰볼 때 정말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이 추모비가 '망각하는 한국인, 그래서 또 당하는 한국인'을 거부하는 상징이 됐으면 좋겠다. 6월은 우리에게 견디기 힘들었던 아픈 사건이 있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침공당해 전 국토가 파괴되고 남한에서만 수십만명이 죽어야 했다. 막을 힘이 없고 준비가 안되면 당하고 죽는다.
그날로부터 이제 겨우 64년이 지났다. 잊지 말아야 할 날이다. 너처럼 철들어 가는 많은 학생들의 나라를 생각할 줄 아는 학생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이 내가 너에게 이 편지를 쓰는 이유이다. 앞으로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면서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