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은퇴를 하거나 거의 은퇴를 가까이 둔 지인들과의 만남이 많아지면서 은퇴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들려오고 있다. 은퇴 후 갖게 되는 여유를 시간으로 따지면 7만 시간 정도라고 한다. 이는 60세에 은퇴해 하루 8~9시간씩 여유시간을 가지고 평균수명 84세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그런 계산이 나온다. 그런가 하면 100세 인생은 꿈이 아니다. 고려대 박유성 교수 연구에 의하면 1958년생은 97세를 돌파할 확률이 남자는 43.6%, 여자는 48.0%임을 볼 때, 그냥 편히 쉬는 것으로 삼기엔 너무도 긴 시간이다.
버킷 리스트는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을 적은 목록을 말한다. 이 단어는 죽다라는 뜻의 속어인 ‘킥 더 버킷(kick the bucket)’에서 만들어졌다. 중세시대 교수형을 집행할 때 뒤집어 놓은 양동이 위에 죄수를 올려놓고 올가미를 씌운 뒤 그 양동이를 걷어찼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2007년 잭 니컬슨·모건 프리먼 주연의 영화 ‘버킷 리스트’가 상영된 후부터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영화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한 병실을 쓰게 된 두 주인공이 자신들에게 남은 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고, 병실을 뛰쳐나가 이를 하나씩 실행해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인생에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살면서 한 일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고 보면 버킷 리스트는 죽음에 임박해서만 유효한 게 아니다. 은퇴 전에 미리 작성해 놓으면 길고 지루한 은퇴기간을 보람되고 행복한 순간으로 만들 수 있다.
한 대기업에서 직원들에게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보라고 했더니 혼자서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세계일주 떠나기, 다른 나라 언어 하나 이상 마스터하기, 열정적인 사랑과 행복한 결혼, 국가가 인증하는 자격증 따기, 국내여행 완전정복, 나보다 어려운 누군가의 후원자 되기, 우리 가족을 위해 내 손으로 집 짓기, 나 혼자만 떠나는 한 달 동안 자유여행, 생활 속 봉사활동과 재능 나눔, 1년에 책 100권 읽기 등으로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났다.
문제는 앞으로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나는 많은 시간이다. 퇴직 후의 20년은 느낌상으로 현역시절 38년에 해당한다. 지금과는 또다른 고령화 사회를 살아가면서 꼭 만들어야 할 버킷 리스트는 무엇인가.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고 미루지 말고 당장 은퇴 후 꼭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작성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은퇴란 말이 불안과 외로움이 아닌 설렘으로 다가올 것이다. 물론 버킷 리스트는 은퇴 후 재정 형편에 맞는 현실적인 내용이 될 수 있도록 곰곰히 생각하면서 작성하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