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야, 이제까지 생활에 익숙한 광양을 떠나 서울에 대학을 다니면서 친구관계도 그렇고, 생활하는데 다소는 어려움이 많겠지? 이제 더 넓은 세상에 가서 네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찾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눈을 더 크게 떠 보면 정말 세계는 넓고 개척해야 할 일들은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 한 나라가 바로 인도라고 생각한다. 최근 비시누 프라카시(57) 주한 인도 대사가 들려준 이야기는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어 너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비시누 대사는 1997년도 아시아 외환 위기 당시 한국인들을 본 모습은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그 때 한국인들은 부족한 외환 보유고를 채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금을 내놓았었고 이 사실이 방송을 타고 세계에 알려졌다. 나도 사실은 일본에서 1998년 2월에 일본 생활을 마치고 5년만에 귀국하여 그때까지 모아 두었던 금을 모두 내 놓았었지. 아마 금액은 한돈당 5만원이 조금 넘은 수준의 가격이었을거야. 그리고 그해엔 봉급도 깎이고 아이들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 조금은 생활이 어려움을 느낄 정도가 있었단다.
그런데 인도 국민은 매년 금 1000t을 수입할 만큼 금에 대한 애착이 유별나다고 하는구나. 비시누 대사는 당시 인도에서 자기 아내에게 "곤경에 빠진 남편을 위해 금을 내놓을 수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아내는 "'남편은 팔아도 금은 못 판다."고 할 정도라는구나. 이 정도 수준이라면 얼마나 금에 집착하고 있나를 느길 수 있구나. 그 이후 그는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2012년 1월 한국 근무를 자원했다고 한다. 중국, 일본 등 8개 국가에서 근무했지만, 특정 국가에서 일하고 싶다고 손을 든 건 처음이라고 하였다.
이 대사는 한국의 역사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그는 "조선시대에 과거 제도를 통해서 선발된 엘리트들이 나라를 이끌었다는 사실이 무척 인상적"이라고 했다. 또한, 인도가 한국에서 가장 배워야 할 점으로 그는 한국인의 교육열을 꼽았다. 그리고 "한국에선 초·중·고등학교까지 대부분 교육을 받으며, 게다가 74%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다. 그게 한국이 6·25전쟁 이후 잿더미에서 고도성장을 일군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라면서 인도와 비교하면서, 인도의 대학 진학률은 15% 정도다. 그는 "인도공과대학(IIT)에서도 우수한 엔지니어들을 배출하고 있지만 경제 성장을 위해선 더 많은 고급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인도를 떠올려 보면 힌두교와 관광, 카레 같은 음식문화부터 생각한다. 하지만 프라카시 대사는 "인도와 한국은 경제적으로도 무척 밀접한 관계"라고 말하는구나. 매달 삼성전자가 인도에서 판매하는 휴대전화가 300만대에 이르고, 현대자동차는 매달 65만대를 인도 남부 첸나이 인근 공장에서 생산한다니 인도에 한국 기업의 활동상을 조금은 알 것 같구나. 포스코는 인도 오디샤주(州)에 제철소 설립을 추진 중이다. 세계에 진출한 한국 IT 기업에서 일하는 인도인도 수천 명에 이른다. 한국에선 대부분의 사람들 인식이 중국 시장만 크다고 생각하는데 인구 12억4천만명, 면적은 한반도의 15배이고, 1인당 국민 소득은 4200달러로 인도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매우 커 엄청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