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무엇에 유혹되거나 붙잡혀 사는 경우가 많다. 예전과 달리 다양한 매체들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음을 사로 잡으면 무엇보다 우리의 시간을 뺏어간다는 사실이다. 시간은 나를 만드는 중요한 재료이다. 그중에 대중을 사로잡고 있는 매체가 바로 스마트 폰이고 가정에서는 텔레비전이 아닐까? 그런데 이러한 흐름에서도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을 가끔 발견하면 신기할 정도이다. 더우기 어린 아이들이 그같은 유행의 유혹을 이겨내고 있다는 것이 더욱 대한한 것이다. 가까이 하는 친구가 가정에서 TV를 없애고 나니 삶이 다음과 같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시간이 굉장히 많아졌다. 슬슬 보던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역사책·소설책·인문학책 종류를 가리지 않고 섭렵했다. 어렸을 때 읽었던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에리히 프롬, 카뮈,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도 다시 읽었다. 조악한 번역에도 감동했던 책들이었지만 다시 읽으니 이 책이, 이 작가가, 이랬던가 하는 새로운 발견으로 흥분됐다.
연초에 여행에서 만난 유전자 전공 의사에게서 들은 생명의 기원과 세포의 움직임, 적자생존의 법칙 등은 아주 간단한 이야기들이었지만 줄곧 마음에 와닿았다. 평생 처음 자연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찾아보니 유전자·양자물리학·뇌과학·우주 이런 제목을 단 책들도 한편에서 유행하고 있었다.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탄생, 인간의 기원 같은 것이 왜 지금 시대에 필요하게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궁극적으로 과학과 인문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인간의 행태를 파악하고 인류의 미래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라는 새로운 지식의 지형도가 확실하게 다가왔고 공감됐다.
책만이 아니었다. 유튜브라는 신기한 채널은 환상 그 자체였다. 쇼팽을 치면 어떤 피아노곡이든 어떤 연주가의 것이든 골라 보고 들을 수 있었다. 텔레비전을 없애고 나니 어제가 오늘 같았고 내일이 오늘 같았던 하루하루가 새로워졌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며 ‘왜 이렇게 맛이 없지’ 불평했던 온갖 것들에서 벗어났다. 지겨운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과목을 선택하고 이것저것 찾아 읽고 보고 가고 느끼니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자연과학책을 읽으면서 놀란 것은 자연과학에서는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면 그동안의 가설은 완전히 무너지고 새로 밝혀진 사실에 의해 모든 이론이 새로 쓰여지고 진전한다는 사실이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처음으로 내세우기까지는 모든 과학과 이론, 철학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지동설이 나오면서 천동설은 무가치해지고 그동안 천동설에 기반한 가설 아래 세워진 모든 이론은 폐기될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왜 텔레비전을 욕하면서 보았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지상파와 종편이 이끌고 있는 90% 이상의 미디어들이 쏟아내는 담론들이 꼭 천동설 시대의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을 통하여 국민들에게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는 천동설을 붙잡고 체제 불안을 내세우면서 세운 가설들로 주입식 교육을 하고 있으니 식상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도 미디어도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시대다. 문제는 의지력이다. 이 의지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가 중요한 교육의 과제이다. 학습에서 성과를 이루지 못한 아이들을 관찰하면 이 의지력의 부족을 발견하게 된다. 앞으로는 과학의 발전으로 얻은 인터넷 시대에 주입식 교육은 설 자리가 없게 될 것이다. 매체가 세상을 바꿔가고 있다. 그래서 교육을 하는 사람들이 매체에 관한 연구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