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진정한 지방자치가 되려면 지방자치기구의 주요 보직이 중앙정부의 입김에 의해 좌우되거나, 낙하산식 인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들도 다 안다. 그런데 그런 상식이하의 한심하고 기가 찬 일이 아직도 거침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시 도교육청의 부교육감 자리다. 원래 부교육감 자리는 일반직이나 전문직이 다 할 수 있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교육의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부터 전국의 16개 부교육감 자리는 일반직과 전문직이 반반씩의 비율로 배분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사실은 그것도 불합리한 처사다. 법적으로 부교육감은 교육감의 추천에 의해 교육부 장관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도 교육감은 그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다. 그것은 시 도교육청이 재정자립을 전혀 할 수 없고, 한 푼이라도 예산을 더 타려면 교육부의 눈치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불만스럽지만 그래도 현실적인 타협으로 생각하고 일반직과 전문직 임용 비율이 50대 50으로 조화를 이루는 선까지는 교육계에서 묵인해 왔다. 그러나 어느 틈엔가 하나씩 둘씩 부교육감 자리가 일반직에 의해 점유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싹쓸이 식으로 몰아가고 있다. 현재 16개 부교육감 자리 중 13개 지역의 부교육감을 일반직이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일반직이 부교육감을 맡고 있는 교육청은 곧 14개 지역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면 2개 지역만 전문직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교육계에서는 사실상 제주도교육청을 제외하고는 전문직이 맡고 있는 교육청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어느 도교육청 부교육감의 경우, 명목상으로는 전문직이지만 교육부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일반직과 다름없는 사람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부교육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에서는 부교육감에 일반직이 임용되면 왜 안 되는가 하고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오히려 교육감이 교원출신이니 부교육감은 일반직이 맡아야 균형이 이루어진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교육감을 일반직이 맡으면 안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자명하다. 첫째로, 부교육감을 일반직이 해서는 안 되는 까닭은 교육감을 일반직이 하면 안 되는 이유와 맥을 같이 한다. 즉, 부교육감은 교육감 유고 시 교육감 직무를 대행하는 자리다. 따라서 교육감과 같은 식견과 전문성을 갖춘 인사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교육감이나 부교육감은 다 같이 관내 초 중 고등학교를 지휘 감독하는 교육행정가인 동시에 그들을 지도하고 조언하는 장학담당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일반직은 장학담당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따라서 부교육감도 당연히 교직경력과 학교경영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전문성이 중요하다. 세 번째로, 절대다수의 교장과 전문직이 50대 이상인데 40대의 부교육감이 버티고 앉아서 결재를 하고, 지시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선의로 해석해도 교원들의 정서에 맞지 않으며, 교원들의 자존심과 사기앙양에 장애가 된다. 일반 기업체나 행정관서에서는 30대 부장 밑에 40대 과장이 있을 수 있고, 40대 시장이나 도지사 밑에 50대 국장이나 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교육청 조직은 기업이나 일반행정관서의 조직과 다르다. 교원직이나 전문직은 서열개념이 별로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교육정책실장이나, 학무국장이나, 초 중등교육과장, 그리고 계장급 장학관들이 모두 교장출신이며, 그들은 보직에 따라 관리관급에서 사무관급까지 왔다갔다한다. 그런 50대나 60대의 교장출신 장학관들이 40대 부교육감의 결재 순서를 기다리며 부속실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을 상정해 보라. 현 교육부 장관은 교원들의 사기진작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부교육감 자리를 전문직에게 돌려주는 일을 과감하게 추진하기 바란다. 아니 법대로 하면 된다. 부교육감을 교육감이 추천하는 자 중에서 임명하라는 것이다. 부교육감 자리에 일반직을 추천하도록 압력을 가하거나, 종용하지 말라는 뜻이다. 지방교육자치단체의 장인 교육감이 누구를 부교육감으로 추천하든지, 교육감이 추천하는 사람 중에서 부교육감을 임명하면 된다. 교육관료들은 지금까지 끈질기게 일반직도 교장자리에 보임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떼를 쓰고, 교육감마저 일반직도 할 수 있게 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의 의지를 관철시키려고 노력해왔다. 교육감이나 부교육감이나 교육장을 일반직도 할 수 있으며, 교장도 일반직이 더 잘 할 수 있다는 논리는 결국 교육을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의미와 같다. 이는 일선학교 교원들의 자존심을 완전히 깔아뭉개는 처사이다. 만약 일반직의 압력에 굴복하여 교육부 장관의 판단력이 흐려지게 되면 일선학교에서의 교육개혁사업은 끝장이다. 그 누구도 정부가 주도하는 교육개혁사업에 동참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원들은 망연자실하여 일손을 놓게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다시 서명운동이 전개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교육부 장관은 명심하기 바란다. 교육의 질은 교사에게 달렸다. 그들의 정서를 무시하고, 그들의 자존심과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는 정책은 삼가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