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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 33년 전의 봄


"내일은 가족들과 함께 산과 들로 나가서 봄을 한번 찾아보도록 해요. 그리고 월요일 한가지씩 가져오면 어떨까요."
"선생님, 봄이 어디 있어요?"
"봄을 어떻게 가져와요?"

아이들의 말똥말똥한 눈망울에 미처 대답을 못한 채 서둘러 퇴근을 했다. 초임지에서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들과 33년만의 만남을 위해서다.

의령의 조그만 시골학교에 첫 부임하던 날. 십리 길을 걸어 언덕을 올랐을 때 하얗게 펼쳐졌던 학교건물들과 운동장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 해 가을, 가야산으로 등산을 가는 처녀총각 선생님 열 명의 이야기가 버스 안에 가득했다.

해인사는 온통 가을 낙엽에 묻혀 있었고 맑고 푸른 가을하늘은 높기만 했다. 가슴 벅찬 감동을 가눌 길 없어 내 옆에 걷고 있는 여자 동기의 손을 살며시 잡았고 우리는 그 때의 기쁨으로 아직도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같이 살고 있다.

그리고 산길을 둘씩 걸어가는 이들이 아직도 한 지붕 밑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니 참 묘한 인연들이 아닌가 싶다. 노총각이었던 최 선생님은 알뜰한 천 선생님과 결혼해 올해 교장으로 정년퇴직을 하시고 평소 갈고 닦은 서양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언제나 성실하신 서 선생님은 박 선생님과 결혼하여 교장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있다.

야무진 체구의 구 선생님은 음식솜씨가 최고인 최 선생님과 잔디밭과 연못이 있는 전원주택에서 토종닭과 무공해 채소로 여러 선생님들을 유혹하고 있다. 막내 권 선생님은 유난히 애교가 많은 조 선생님과 결혼하여 첫 외손자를 안은 기쁨으로 알뜰살뜰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늦깎이 작가가 되어 이렇게 우리의 글을 한번 써보라고 부탁받는 영광까지 얻었으니 이 또한 얼마나 큰 행복인가. 토요일 저녁, 가야산 뒷산에 있는 숙소에서 우리들은 33년전 열정과 회초리로 아이들을 가르치던 그 때를 그리워하는 교사로 돌아가고 있었다.

가야산에서 내려오는 길, 아이들에게 봄을 보여주기 위해 산수유 꽃가지로 얼른 손이 가는 것을 보니 나는 어쩔 수 없는 교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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