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에서 문예 지도를 하고 있는 교사이다. 지난달 24일 경북 영천시에서 열린 ‘임고서원성역화사업’ 준공식에 학생을 데리고 다녀왔다.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의 충절과 업적을 기려 경북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일대에 조성한 추모 기념관을 준공한 뜻깊은 자리였다.
내가 준공식장에 간 것은 제1회포은문학제 전국청소년문예백일장에서 제자가 우수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학생지도 공적을 인정받아 경상북도교육감 지도교사상을 받게 되어 있었다. 당연히 직접 가서 상을 받는 게 주최 측에 대한 예의라 생각했다.
물론 평일이라 시상식장에 가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우선 4명의 동료에게 수업을 부탁했다. 가는 데만 3시간이 더 걸리는 곳이라 시상식 시간을 맞추기 위해 새벽에 집을 나서기도 했다. 그래도 즐거웠다. 내가 지도한 학생이 상금과 함께 상을 받으러 가는 길이어서다.
준공식은 성대했다. 조순 전 총리를 비롯 지역구 국회의원, 영천시장, 영천시의회 의장, 영천교육장, 3군사관학교장 등 내빈 외 수많은 지역민들이 운집해 있었다. 해외출장중인 경상북도도지사는 영상을 통해 인사하기도 했다.
참석인사 면면 등 매우 뜻깊은 행사에서 뭐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 것은 식이 끝나고나서였다. 문예백일장을 주관한 영천문인협회 사람들과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상금이 없어졌다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의 믿기지 않는 얘길 들은 것이다.
내가 공모전 안내를 본 것은 네이버의 ‘엽서시 문학공모’를 통해서였다. 거기에는 대상 경상북도교육감상장과 상금 5십만 원, 최우수상 경상북도교육감 상장과 상금 3십만 원, 우수상 영천시장상장과 상금 2십만 원이라 되어 있었다. 지도교사상은 훈격이 경상북도교육감이고, 상금 따윈 없었다.
나는 그 소릴 함께 전해들은 제자의 표정이 금세 울상이 되는 걸 보고 말았다. 동시에 학생의 부모나 교장과 교감, 동료들에겐 이런 황당한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멍한 기분이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영천시청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운운하며 관련 예산을 지원하지 않아 생긴 일이었다. 제1회 대회라 여러 가지 미숙한 점이 드러날 수 있겠으나, 공문서에 제시된 상금 수여 자체가 ‘없었던 일’이 되어버린 것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영천시청만 그런 행사에 예산을 지원하는 게 아니다. 전국의 문인추모 백일장이나 공모전 등은 지자체의 예산지원으로 이루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난한 문인단체만으로 전국 규모의 백일장이나 공모전을 하는 곳은, 내가 아는 한 없다.
나는 20년 넘게 문예지도 교사를 하면서 지자체가 예산지원을 하지 않아 이미 공지된 수상자 상금이 없었던 일이 된 건 그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다. 전국 규모 대회의 경우 타시·도 수상자의 상금은 줘도 되는 걸로 알고 있기도 하다.
상금 없이 수정된 공고를 영천시청 홈페이지에 탑재한 것만으로 그 황당함이 상쇄되진 않을 것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운운했다면 그것은 무지의 소치이거나 영천시청의 직무유기이다. 공직선거법 제112조 2항은 “지방자치단체가 대상·방법·범위 등을 구체적으로 정한 조례에 의한 금품제공 행위는 직무상의 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기부행위 예외조항’을 참조했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정몽주 같은 충신을 추모하는 행사에 그런 오점을 남긴 영천시청의 실책은 크다 할 것이다. 나름대로 사정이야 있겠지만, 차제에 경상북도교육청에도 지도교사상에 그렇듯 인색하게 굴지말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최악의 경우 예산이 없다면 상장만 달랑 주는 그런 공모전을 개최해 전국적으로 ‘쪽팔리는 짓’은 하지말기 바란다. 이런 이야길 공개하는 것은, 내년부터라도 당연히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해 학생 울리는 공모전이 되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