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에 비해 역사를 꽤 알고 있다 자부했는데, 어느 날 신문을 읽으며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베스트셀러 1위 소설 ‘덕혜옹주’에 대한 기사 “고종 막내딸 기구한 삶에 끌렸죠”(동아일보, 2010.2.4)를 보고 그랬다. 고종이나 영친왕은 알았어도 덕혜옹주가 누구인지, 그의 삶이 어땠는지 비로소 알게 된 충격과 그 무지함을 만회라도 하듯 직방 책 구입에 들어갔다.
하긴 내가 국사 교사나 사학 전공자는 아니다. 국어교사지만 문학을 주로 가르쳐왔기에 역사는 늘 ‘옵션’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박종화의 ‘정통’ 궁중중심 역사소설들을 넘어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토지’ ‘장길산’ ‘객주’ ‘임꺽정’ ‘야정’ ‘화척’ ‘타오르는 강’ ‘늘 푸른 소나무’ ‘혼불’ 등 이른바 대하소설 내지 대하역사소설들을 섭렵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동이’ ‘추노’ ‘제중원’ ‘선덕여왕’ ‘자명고’ ‘천추태후’ ‘주몽’ ‘해신’ ‘불멸의 이순신’ ‘대조영’ ‘이산’ 등 대하드라마 역시 하나도 빼놓지 않고 시청한 것도 그래서다. 역사는 학생들에게 문학을 비로소 문학답게 가르치게 할 수 있는 ‘치명적’ 자양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속된 말로 밥그릇만을 지키기 위해 그 어려운 역사와 만나기 시작했겠는가? 당연히 그건 아니다. 역사는 현재를 있게 한 동인(動因)이다. 역사는 미래에 대한 예정의 열쇠이다. 역사는 민족과 국가의 뿌리, 작게는 나의 본질적 존재감을 깨닫게 하는 촉매제이다. 요컨대 역사는 단순히 흘러가버린 단순한 과거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덕혜옹주’(권비영 지음)를 읽은 것이 가벼운 복고 취미 따위는 아니다. 마침 ‘왜놈’에게 나라를 ‘정식으로’ 빼앗긴지 100년. 무엇이 그토록 자존심 강했던 조선을 나락의 구덩이로 빠지게 했는지, 그후 위정자들의 철면피한 행태와 대다수 민중들 삶은 또 얼마나 고단했는지 등을 궁금해하는게 비단 나뿐만은 아니리라.
출간 한 달 남짓 만에 약 14만 부(광고이긴 하지만, 2010년 10월 25일자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60만 부를 돌파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정도 팔렸다는 ‘덕혜옹주’ 소식이 가슴 뿌듯함으로 차오르는 경험도 그래서 즐겁다. ‘대박’난 출판사와 무명작가의 설움을 씻어버릴 지은이를 생각해서가 아니다. 내가 ‘덕혜옹주’의 베스트셀러 행진을 반가워하는 것은, 그만큼 이 땅의 많은 이들이 역사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확신이 생겨서다.
사실 역사드라마 ‘추노’가 시청률 30%대의 인기를 누린 것도 일단 그 새로움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내시를 주인공으로 한 사극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노비의 세계는 처음이라 우선 신선할 수밖에 없다. 본능적으로 대중은 ‘그 나물에 그 밥’이 아닌, 뭔가 아직 보지 못한 어떤 기대감을 갖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소설 깨나 읽었다고 자부하는(사실 나의 석사학위 논문도 ‘박종화 장편역사소설 연구’이다) 나조차 처음 알게된 고종의 딸 덕혜옹주 이야기이니 그 새로움을 다시 말해 무엇하랴! ‘덕혜옹주’는 그렇게 내 의식 속, 수업시간에도 ‘왜놈’이라 예사로 호칭하는 나의 역사의식 속으로 끈적끈적 스며들기 시작했다.
역사가 아니라 역사소설이기에 덕혜옹주의 핍진했던 삶이 과연 사실일까를 애써 따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역사를 허구의 세계로 버무린 소설이기에 건조함보다 촉촉함이 배어 있음을 주목하게 된다. 예컨대 허복순과 김장한이라는 캐릭터 설정이 그것이다. 과연 복순은 진짜로 어린 시절 덕혜옹주가 ‘왜놈’ 순사에게서 구해낸 것일까. 고종으로부터 부마 지목을 받은 장한이 일본까지 건너가 덕혜옹주 구출에 일평생을 보냈을까?
소설은 1909년, 나라 잃는 비극의 불쾌한 기운이 가득한 때로부터 시작한다. 급기야 ‘왜놈’에게 강제로 나라를 빼앗기고 만다. 그런 와중에 덕혜옹주는 태어난다. 여전히 “조선황실의 꽃이며 비할 바 없는 보석”인 덕혜옹주는, 그러나 “그와 동시에 게다를 신고 하오리를 걸치고 학교로 향하는”(91쪽) ‘미친’ 역사의 산 증인이 된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감히 이해한다 말할 수조차 없는 덕혜옹주의 비극적 삶은 1925년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며 본격화된다. 황녀로서의 의연함, 식민지라는 짐지기 힘든 선물밖에 준 것이 없는 조국 조선에 대한 그리움, 아버지 고종과 어머니 양귀인에 대한 사무침과 달리 맞닥뜨린 현실은 참혹하기 이를데 없다. ‘왜놈’과의 결혼, 딸(정혜) 출산, 정혜의 대거리 등이 그것이다.
“엄마 따라 조선에 가고 싶다고 했잖아. 너는 엄마 딸이야.” “조선은 이제 없어! 망해서 없어진 나라라고! 대일본제국의 식민지란 말이야!” 정혜가 대꾸했다. 그때까지 견디어 왔던 굴욕의 시간들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중략> 저것이 내 굴욕의 마지막 징표다. 저것을 내 뱃속으로 낳았다. 저것이 외치는 저 소리, 내 삶의 뿌리까지 뒤흔드는 저 소리, 조선의 존귀함조차 부정하는 야멸찬 저 소리. 저것을 내가 낳았다. 덕혜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겨우 지탱한 채 정혜 앞으로 다가갔다.(298쪽)
잠깐 인용부터 했지만, 딸의 이 같은 반항을 이겨낼 부모는 없다. 하물며 식민지 조선의 황녀로서 자신이 배 아파가며 낳은 딸이 “나는 일본인이야.”(294쪽), “정혜라는 이름이 싫어. 엄마도 싫어!”(296쪽)를 예사로 외쳐댄다. 낯선 땅에서 모진 목숨 이어가며 버텨내던 마지막 보루마저 허물어졌을 때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하나다. 바로 자살이다.
37세에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가 8년 전 73세로 세상을 버렸을 때다. 그야말로 원없이 펑펑 울었던 형·누나와 다르게 나는 어쩐 일인지 눈물을 찔끔거리기만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는데, 그 대목에서 나는 콧등이 시큰거려 견딜 수 없었다.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고작 차를 마시거나 마시지 않거나, 매화를 치거나 치지 않거나 하는 정도였다”(278쪽) 등에서 이미 깨닫던 ‘나라 잃은 설움’이 나도 모르게 북받쳐 올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덕혜옹주를 구출하려는 조선청년들과 복순은 또 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우선 한창수라든가 갑수 같은 반동인물이 김장한(박무영)·기수 들과 대비를 이룬다. 식민지 조선의 양면을 극명하게 드러내 소설로서의 균제미를 살리고 있음이다. 복순의 아버지 허 승의 행적이 용두사미로 끝나 아쉽지만, 사실 장한·기수·복순의 그런 결기와 행동은 단순한 조연급에 그칠 일이 아니다.
그들은 덕혜옹주 구출은 개인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을 구하는 것이라 믿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사건으로 프롤로그 다음 첫 장 ‘유령의 시간’을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라 짐작된다. 그들의 죽음을 사양하지 않는 의거가 있었기에 식민지 조선은 일본의 한 현이 되지 않았다. 오늘날 대한민국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물론 엄밀히 따져 해방은 미국과 소련이 주도한 패권 경쟁의 산물이긴 하지만,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조국수호 열정이 간과되어선 안 될 일이다.
자살마저 의지대로 할 수 없었던 덕혜옹주는, 해방이라는 민족의 기쁨에도 아랑곳없이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자신의 유일한 핏줄, 나아가 반쪽일망정 조선황실의 마지막 자손인 정혜를 조선으로 데려가고자 한 의지가 무참히 꺾일 때 다시 한 번 나라 잃은 비극이 그런 것이로구나 하며 가슴을 친다. 정신병원에 갇힌 덕혜옹주는 딸의 결혼과 자살소식 등을 알지 못한다. 결혼후 부쩍 어머니를 찾았다는 사실까지도. 그래서 더 아릿하다.
이 땅의 ‘미친’ 역사에 불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러고 보면 지금의 이 삶은 너무 행복하다. 아직도 좌니 우니 이념대립에다가 틈만 나면 서로 으르렁대는 정치권 이전투구가 짜증나고 낯을 찌뿌리게 하지만, 참으로 대단한 민족이라는 뿌듯한 생각이 절로 차오르는 것도 그 때문이지 싶다. 그렇다. ‘덕혜옹주’는 나라를 팔아먹은 치들의 준동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말아먹지는 않은 민족의 그 저력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한편 ‘덕혜옹주’는 역사소설이면서도 어려운 용어가 별로 없는 장점을 갖추고 있어 읽기에 편하다. 모든 글의 핵심적 기본이라 할 문장도 간결·단아하여 현대소설 못지 않는 읽히는 힘을 겸비하고 있다. ‘덕혜옹주’의 베스트셀러행진이 한층 미덥게 느껴지는 이유중 하나이기도 하다. 말할 나위 없이 이 두 가지 요소는 역사소설이 대중들과의 거리감을 좁힐 때 아주 중요하게 작용하는 필수 조건들이다.
그렇다고 아쉬움이 전혀 없냐면 그렇지는 않다. 간간이 보이는 잘못된 띄어쓰기나 오타(이후 출간에서 교정되었으면 한다)는 애교로 봐준다하더라도 몇 가지는 치명적 약점으로 읽힌다. 먼저 너무 빠른 시간전개이다. 아마도 1909년부터 1962년까지의 시간 및 시대적 배경을 1권 분량으로 다 소화하려는 데서 온 ‘의도적’ 실수가 아닐까 한다. 그렇더라도 몇 페이지에서 몇 년씩 세월이 훌쩍 흘러버리는건 좀 그렇다. 전개되는 비극적 내용에 촉촉이 젖어들 짬도 없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으니까.
다음 복순에 대한 구체적 묘사 미흡이 아쉽다. 앞에서도 잠깐 말했듯 이 소설에서 복순은 함축적 의미까지 더해 매우 중요한 캐릭터다. 그런데 덕혜옹주가 출산할 즈음 복순은 집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낯선 사내들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고 내쳐진다.
한창수의 지시 등 짐작은 되지만, 구체적 묘사는 없다. 비극미 고조를 위한 소설적 장치에 실패한 셈이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고, 이후 가게운영하는 정착과정이나 죽음장면까지도 그렇다. 상황은 생략된 채 결과만 그려져 그런 느낌을 준다.
역사서가 아닌 소설이기에 아쉬운 점도 있다. 어차피 소설이니까 복순이 정신병원 청소부로 취직하여 이루어지는 덕혜옹주와의 해후를 좀 더 극적으로, 통속적으로 묘사했더라면 좋을 뻔했다. 덕혜옹주가 거의 유일하게 마음을 열고 의지해마지 않던, 하녀라기보다는 ‘동무’였던 복순이기에 대놓고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꺼이꺼이 울었더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카타르시스라는 행복함을 느꼈을 법하다.
글쎄, 비운의 황녀에 대한 왕조중심적 사관이 배어난 안타까움 때문이었을까. 가령 61쪽에 묘사된 어린이의 어른 시점은 무릇 소설에서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덕혜옹주 7살 때 아무리 왕족이라지만, 고종의 죽음을 독살이라 인지할 수 있었을까? 그런 의문이 가시지 않아서다. 역사적 상상력은 작가의 자유지만, 소설적 리얼리티는 그것과 상관없이 살려내야 한다. 비로소 그때 문학적 생명력이 담보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또 있다. ‘덕혜옹주’의 역사에 대한 추체험이 이 정도라면 ‘추노’ 못지 않은 대접이라야 맞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니어서다. 시청률 30%를 넘어선 ‘추노’는 언론(신문)이 경쟁적으로 리뷰성격의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온 국민의 염원이 만들어낸 압도적 1위!’(한겨레,10.2.4)라는 전면광고를 봤지만, 그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신문의 자발적인 뜨거운 관심이다.
하긴 해방되고도 17년이 지나서야 덕혜옹주가 이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니 장한이나 복순을 대하기가 너무 부끄럽고 미안하다. 강제병합 100년, 해방된지 65년이 지난 지금 이 땅에선 심지어 품질이 좋다며 일제 된장까지도 스스럼없이 사 먹는다. 설마 덕혜옹주 같은 비운의 삶을 유산으로 남겨준 왕조의 후예라는 사실을 애써 떨쳐내려 그리 하는 것일까?
불현듯 맹자의 가르침 하나가 떠오른다. ‘수오지심’이다. 수오지심은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동시에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역사소설 ‘덕혜옹주’는 오늘의 우리에게 역사를 읽을 때의 딱딱함 대신 더없이 촉촉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너희들 도대체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