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6일 전파를 타기 시작한 KBS 1TV ‘근초고왕’은 정통 대하사극의 자존심이라 할만하다. 한때 넘쳐났던 사극 열풍과 대조적으로 TV 3사를 통틀어 거의 유일한 정통 대하사극이기 때문이다.(MBC TV ‘짝패’가 있지만, 그것은 대하사극, 더구나 정통 대하사극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근초고왕’의 가치는 각별하다. 소재 고갈, 시청률 하락 같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KBS가 자체 제작하고 있어서다. 60부작 예정(4월 3일 44회 방송)인데다가 그 후속작으로 고구려 광개토대왕, 신라 태종 무열왕 등의 일대기를 계획하고 있어 모처럼 공영방송다운 모습이 미더워 보인다.
사실 KBS는 2TV로 대하사극을 방송하는 등 잠깐 ‘외도’를 한 바 있다. ‘천추태후’, ‘대왕 세종’ 등이 얼른 생각나는데, 시청자들은 광고와 함께 정통 대하사극을 봐야했다. PPL(간접광고)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사극 퇴조의 한 원인이라는 지적이 있으니 딴은 그럴 듯하다.
그렇더라도 공영방송은 역시 공영방송다워야 한다. 특히 1TV는 시청률 따위에 일희일비하는 상업적 인상을 풍겨선 안 된다. ‘명가’, ‘거상 김만덕’에 이은 뒤늦은 귀환이지만 ‘근초고왕’ 방송은 그래서 더없이 반갑다. 각별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그런데 삼국 중 백제가 가장 먼저 멸망해서인가? 고구려 ‘주몽’, 신라 ‘선덕여왕’, 심지어 발해의 ‘대조영’까지도 인기를 끌었는데 유독 ‘근초고왕’만 12.2%(TNmS 제공)로 시청률이 저조하니 말이다.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조선시대의 ‘동이’마저 인기를 끌었기에 ‘근초고왕’의 시청률 저조는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앞에서 시청률 따위에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주문했는데 그것은 공영방송의 본분을 다하라는 얘기일 뿐이다. ‘재미있게’는 또 다른 얘기이다. KBS 2TV ‘추노’의 인기를 교훈삼을 만하다.
정통 대하사극이라는 기본적 부담감이 있겠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볼 수 있도록 빚어내란 것이다. 더우기 백제는 사실상 처음으로 다루는 정통 대하사극의 주제 아닌가!
사실 ‘근초고왕’은 도입부터 전개가 너무 산만했다. 가장 먼저 망한 나라의 역사라 그 후 왕조에 의해서 왜곡·변질되었을망정 뭔가 호기심어린 기다림이나 강렬한 끌림을 주지는 못했다. 부여 구(감우성)가 근초고왕이 되기까지 결국 피비린내 진동하는 골육상쟁의 연속인데, 그걸 재미있게 그려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투신이 스펙터클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요서경략’ 같은 이민족과의 대규모 전쟁은 물론이고 마한 정벌 및 국내에서 벌어지는 반란장면 등도 스펙터클한 전투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말을 달려 창검이 부딪치고 하는 전쟁이 ‘놀이’로 보일 정도다.
여화(김지수)·홍란(이세은) 등과의 멜로 부각 자제는 미덕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상하관계가 뒤죽박죽이다. ‘백성의 나라’가 아닌 ‘내 나라’인 시절 시비(단단이) 따위가 주인(여화)에게 수시로 훈계성 발언을 하고 있어서다. 또한 주인(홍란)이 시비(치희) 비위를 맞추고 있는 것도 어색하다.
언어사용 상 오류도 시청을 불편하게 한다. 당대의 언어 재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해도 멀쩡히 살아있는 아버지를 ‘아버님’이라 불러 수시로 죽이는가 하면 ‘깨끗이’를 ‘깨끄시’가 아닌 ‘깨끄치’로 발음하고 있다. ‘손자’를 ‘손주’로 잘못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에 비해 장면전환은 대하사극답지 않게 아주 빠르게 이루어진다. 빠른 장면 전환은 긴장감을 주지만, 몰입방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43회(4월 2일 방송)를 42회로 표기하는 실수가 있었는데, 44회 방송에서 사과 자막도 없이 지나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