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1 교육개혁 이후 학교 교육의 자율성이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7차 교육과정, 고교 평준화정책, 대학 본고사 제한 등의 정책이 교육의 자율성과 특수성을 제약하는 주요 교육규제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 중등교육의 개혁을 위해서는 평준화 정책의 전면 개편이나 수정·보완이 선행돼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교육개발원은 4일 발간한 '교육규제 개혁의 국제동향 분석'(연구책임자 김영철 선임연구위원) 보고서를 통해 "주요 선진국의 경우 공통적으로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을 확대하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나라는 공립은 물론 사립학교까지 평준화정책이 실시되면서 학생선발, 교원인사, 재정 운영 등 자율적 학교운영을 막고 학생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현재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된 교육규제 건수는 학교설립인가 등 139건. 대부분 교육법령상 규제로 나타났다. 하지만 초·중등학교 교원과 교육청 행정담당자들은 법령보다도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에서 하달되는 지침·지시에서 교육규제를 체감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초·중등 교육과정 운영 및 수업활동과 관련한 규제로 수준별 수업 및 특별보충과정 운영, 교과서 및 인정도서 사용제한, 보충자율학습 시행여부 및 방법, ICT 활용학습의 의무 시행, 학업성취도 평가 및 학교평가의 시행방식 등이 꼽혔다. 또 학교운영에 관련된 규제로는 교장의 재량권을 제한하는 학교운영위원회의 운영방식, 학생선발권의 제약, 학생 체벌기준, 각종 행사 참여 등이 도마위에 올랐다.
김영철 선임연구위원은 "심지어 자율성이 상당히 보장된 자립형사립고도 정작 학생선발을 위한 필기고사가 금지돼 있고 새 학년의 시작도 3월 1일로 고정돼 있어 9월 신학기가 특징인 외국학교 진학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보고서에서는 우리나라의 제7차 교육과정, 학교운영위원회, 고교평준화 정책이 교육규제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해 관심을 끈다. 이에 따르면 1974년 처음 시행된 평준화정책은 학생,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을 제한하고 학교의 학생선택권을 빼앗는 근거로 작용하는 것으로 지적됐다. 또 학생선발, 교육과정 운영, 교원인사, 재정 운영 등 학교운영 전반을 제한하고 창의적인 학교교육을 막는 걸림돌로서 시급한 보완돼야 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를 독립적인 교육정책의 방향으로 추진하는 선진국의 추세에도 역행된다는 것이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미국과 영국 등은 학교선택권을 넓혀주기 위해 학교를 다양화하고 학교성적을 학부모에게 공개하고 있다"며 "선택권 확대는 물론 중등학교가 자율권을 갖고 창의적인 교육활동을 펴려면 평준화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선택이 가능한 학교 설치를 확대하고 평준화 학교들이 학교운영에 관한 정보를 학부모에게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제7차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교과목 선택권과 교사의 교과목 구성권을 제한하는 점이 가장 큰 규제 요소로 지적됐다. 대부분의 인문고가 5개 교과군 가운데서 이미 선정된 일반·심화선택 과목 중 최소한의 선택을 할 수 있을 뿐이며 이는 다양한 교과개설에 필요한 교원 및 시설 등이 확보되지 못한 데 기인한다는 지적이다.
또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행정의 민주화와 투명성 제고, 학교구성원의 참여확대 등의 효과를 거뒀지만 학교장의 자율권을 지나치게 제약하는 기구로 평가됐다.
김 위원은 "현장학습, 수학여행, 졸업앨범 제작 등 학부모가 경비를 부담하는 행사나 학교행사 등 학교 운영의 세부사항까지 심의 의결하도록 돼 있어 학교장의 재량권을 상당 부분 제약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