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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 "선생님, 점심 같이 먹어요"


98년 3월 2일 S초 교감 부임 첫날. 바쁘게 오전을 보내고 점심시간에 아이들의 식생활을 점검하는 순간, 깜짝 놀랐다.

2학년의 보림이라는 어린이가 식판을 앞에 놓고 침만 줄줄 흘리며 밥을 먹지 않고 부동자세로 앉아 있었다. 친구들이 밥을 다 먹으면 보림이도 밥과 반찬을 버리고 교실로 간단다. 어머니를 오시라 해서 같이 먹게도 해보고 여러 방법을 다 써봤지만 아무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다음날부터 교실로 찾아가 "보림아 안녕?"하고 웃으며 인사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처음 며칠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갔으나 매일매일 지켜보며 인사했더니 15일 이후에는 빙그레 웃으며 눈을 맞췄다.

다음으로, 한글 미해득자를 조사해 6학년 1명, 2학년 보림이와 다른 2명을 방과후 교무실로 불렀다. '나, 너, 아버지, 어머니' 등을 읽혀 보았다. 보림이는 눈치만 보며 전혀 읽지 않고 있었다. 내일부터 선생님과 공부하자고 보림이를 달래며 '아버지, 어머니'를 공책에 써주고 10번씩 써보게 했더니 보고는 잘 썼다.

읽지는 않으려 하길래 선생님 귀에만 대고 읽어보라고 했더니 아주 작은 소리로 읽었다. 박수를 쳐주며 상으로 사탕을 주었다. 며칠 후에는 내일도 공부하러 와도 되냐고 묻기도 하고 교무실에 와서 공부하자고도 졸랐다.

보림이와 다른 두 명을 위해 포도송이를 만들고 열심히 공부하거나 점심밥을 남김없이 먹는 어린이에게는 예쁜 포도알을 붙여준다고 했더니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다. 보림이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간호사가 되어 내가 아프면 치료해주겠단다. 점심밥을 먹으면 더 건강하고 공부도 잘할 수 있다며 내일부터는 점심밥을 먹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대화한지 47일만에 드디어 보림이가 밥을 먹게 됐다. 선생님과 전교생, 급식실 식구 모두가 깜짝 놀랐다. 여러 사람이 보면 밥을 먹지 않아 급식실 옆 도서실로 가서 둘이서 밥을 먹자고 했더니 따라와서 밥을 맛있게 먹었다.

"내일도 교감선생님과 같이 점심 먹고 싶어요"라며 생기 넘치는 얼굴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보림이의 모습을 보며 '사랑은 아무리 두꺼운 벽도 허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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