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상의 작은 섬이지만 그래도 관광지로 꽤 이름난 곳의 작은 분교. 그 곳에서 근무했을 때 일이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 중의 한 날..그날은 유난히도 새벽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새벽 5시인가? 그렇게 이른 시각이 결코 아니었지만 전 날 시골 밭에 열무씨를 뿌리고 고향친구들과 막걸리를 했다. 숙명처럼 고향을 떠나지 못하며 노모가 계시는 시골집을 맴도는 생활 속에서의 일이었다 .
시골 밭일을 마치고 수원으로 돌아와 푹 잔다곤 했는데 피곤은 여전했었다. 오늘 학교가 있는 섬으로 들어가는 물길은 아침 7시 12분까지는 통행가능..조수표를 확인하고 도시락을 조수석에 저고리와 함께 놓고는 집을 나섰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48km. 55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새벽 비를 가르며 달려서 학교까지는 12km 남았을 때로 기억된다. 보통때면 수 많은 차와 스쳐가며 차 번호로 라이트 껌벅이며 인사를 했던 장소인데도 왠일인지 통행하는 차가 별로 없었다. 비가와서 섬사람들이 육지로 나가는 일이 없나보다라고 단순히 생각하며 막 섬으로 들어가는 바닷길을 접어들 무렵 더 세차게 내리는 빗물과 바람..
바닷길 군인들의 통제소 문도 활짝 열려 있었다. 그 때는 바닷길을 군이들이 통제하던 시절이었다. 평소 물길이 닫힐때면 군인들이 보초를 서며 통행 불가 사인을 보내 통행을 제지하는 곳이었다.
차 안의 시각 확인 6시 52분..20분의 여유가 있었다. 바닷길은 정확하게 2200m. 멀리 희미하게 바닷길이 보였다. 회색빛의 콘크리트 길이 바다의 뻘과 분간이 되지 않았다. 100m쯤 진입했을 때 길 왼쪽으로 바닷물이 들어고 있었다.
착시인가? 밀물의 색은 콘크리트 색과 똑 같았다. 200m쯤 진입했을 때 다시 한번 시각 확인 6시 59분, 통과여유 13분 남은 거리 2km. 기아를 2단으로 변속하고 액셀을 밟았다. 평소 잘 아는 길이라 자신이 있었다. 약 1km진입 했을 때 겁이 벌컥 나기 시작했다. 자동차 바퀴 1/3을 잠그고 있는 바닷물이 차창 너머로 넘실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 세게 엑셀을 밟았다. 1.5km쯤으로 기억하는 곳, 약간 커브길로 익숙한 곳이다. 순간 자동차 핸들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털.....컥 전륜구동의 자동차 앞 바퀴가 콘크리트 길 왼쪽으로 떨어졌다. 비가 쏟아지는 바닷길의 한 가운데에서 일어난 상황이었다. 아..... 이것이 죽는 거구나.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밀물을 두려워하나 보다.
짧은 생각을 마치고 자동차에서의 탈출을 시도했다. 차문을 여는 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바닷물.....순간적으로 도시락과 저고리를 들고는 뛰어 내렸다. 무릎이 바닷물에 잠겼다. 어느 쪽으로 뛸까? 육지 쪽? 아니면 분교쪽으로?
동물적 감각 본능에 몸을 맡겨 분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온 몸으로 바닷물을 가르고 헤집으며 분교로 몸을 향했다. 도시락과 윗저고리를 입에 문 채 온 몸을 움직였다. 바닷물이 온 몸을 휘감는 저항은 의외로 컸다. 얼마만인가? 바닷물 저항이 약해짐이 느껴 발을 디뎌 보았다. 뻘이 밟힌다.
이 번에는 길을 찾아 뛰는 일만 남았다. 길을 찾은 후 달렸다. 세차게 내리는 비가 얼굴을 따갑게 때렸다. 점점 차오르는 바닷물을 속을 정신없이 달렸다. 멀리 희미하게 섬 안의 초소가 보였다. 이제 살았구나. 신기하게도 손에는 입에 물었던 저고리와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순간 웃음이 나왔는데 얼굴이 척척했다. 얼굴을 덮었던 눈물이 튀어 오른 바닷물과 섞여 찝질하였다.
바람불며 비오는 날에는 바닷물이 빨리 들어온다는 사실을 그 날 저녁에 알았다. 해마다 이 때 쯤이면 여지없이 생각나는 그 때 그 일이다. 그 곳에 학교가 있고, 학생이 있었기에 내가 그 곳엘 갔었고 또 지금의 내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