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5년 문민정부가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제안한 자립형 사립고는 지식정보화사회에 필요한 고급 인력 양성이라는 의지를 담고 있다. 물론 1974년 이후 실시해온 평준화 정책이 나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평준화 정책을 유지하면서 시대적 요구와 교육수요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다양한 학교와 교육유형을 마련해 선택하도록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올해 처음 도입되는 6개의 자립형 사립고는 여러 우려를 불식시킬 운영의 묘를 살려 나간다면 우리 교육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학력 수준이 비슷한 학생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그 결과 학력이 신장되어 국가경쟁력이 높아 질 수 있다. 현재와 같은 교육 여건에서는 수업 내용을 소화해 내는 학생이 학급당 10% 정도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왔다. 학력 차가 현격한 학급에서는 우수생은 물론 열등생도 소외될 수밖에 없다. 자립형, 자율형 학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둘째로 교육의 질이 높아져서 사교육에 의존하거나 해외로 유학을 가는 학생들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평준화 정책은 사교육에 대한 의존과 해외 유학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유는 교육소비자들은 좋은 품질의 교육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학습자들로 구성된 집단에서 진행되는 학습으로는 좋은 품질의 교육을 기대할 수 없다. 교육의 품질을 높여 학력을 신장시키고 지식산업사회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인재들이 국내에서 공부할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자립형, 자율형 학교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셋째, 다양하고 역동적인 교육 내용을 제공해 개인의 성장과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학습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 그 동안 평준화의 틀 안에서 안일한 교육행정과 보수적인 학교 운영으로 교육의 품질을 크게 향상시키지 못한 게 사실이다. 21세기에는 생각은 'Globally', 생활은 'Locally'해야 한다. 그래서 'Glocalization'이라는 말이 새로 생겼다. 다양한 문화와 사회에 대한 이해, 그리고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는 성공적인 사람으로 21세기를 살기 위한 필수 요소다.
이러한 인간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교육의 질적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그 질적 변화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요소가 바로 다양하고 역동적인 학습 내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 시스템 자체가 다양화되어야 하고, 그 다양화된 시스템 속에서 역동적인 교육 내용이 실행돼야 한다.
넷째, 사학은 개인이나 법인의 건학 이념에 따라 설립된 교육기관이므로, 사립학교 본래의 취지를 살리는데 이바지 할 수 있다.사학설립자는 자신의 건학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정신적, 금전적 투자를 하고, 자율적으로 교육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립학교를 공교육화하고 매년 1조 4000억원을 지원하면서 그 자율적 교육권을 통제하거나 제한해 왔다.
이제 사학을 그 설립자에게 돌려주고 동시에 그 교육적 자율권을 보장해서, 사학이 사학다운 면모를 갖추어 다양한 교육제도와 교육방법, 교과지도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자립형, 자율형 학교는 시대적 요구다. 평준화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시대에 맞는 유능한 인재를 기르는 교육이 진행돼야 하며 자립형, 자율형 학교를 하나의 돌파구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 자립형사립고의 자격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 자립형 고교를 하고 싶어하는 건전한 사학들 중에는 재단 전입금 부담으로 망설이고 경우가 있다. 또 사립형 학교로 전환하려는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의 신분이 보장돼야 한다.
이들 역시 공교육 체제하에서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야 한다. 건전한 사학들이 건학 이념을 살려 시대적 요구에 합당한 유능한 인재를 기르는 일에 기여하도록,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제도의 틀과 범위를 낮추고 확대해서 폭넓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