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긴 바뀐 모양이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당선과 함께 예고된 일이긴 하지만, 대교협(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 최근 2009학년도대학입시전형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아다시피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대학입시 자율화를 교육정책 중 하나로 내놓은 바 있다.
대교협 발표에 따르면 2009학년도 대학입시에서는 논술가이드라인이 폐지된다.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학교생활기록부의 반영비율은 대학자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대교협은 “각 대학들이 2월 말까지 전형요강을 제출하면 3월 말 확정ㆍ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바야흐로 대교협 주관의 대학입시가 시작된 셈이다.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초ㆍ중ㆍ고 공교육을 좌우하는 대입정책을 대학과 대교협에 넘기는 것은 너무 이르고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학교 현장의 대다수 학생ㆍ교사 학부모들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그렇다.
사실 대교협은 민간단체(사단법인)이다. 1982년 출범한 대교협은 4년제 대학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단체이다. 그 동안 대학입학전형 업무 등을 교육부로부터 위임받아 처리해왔다. 1994년부터는 대학평가도 하고 있으나, 굳이 따져보면 이익 내지 친목단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대교협의 대학입시 관리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대교협 관리의 대학입시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그 와중에 학계나 언론이 무관심 내지 방치하는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수능시험 시행문제이다.
수학능력시험은 이를테면 국가고시이다. 그 동안 교육부 산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ㆍ시행해왔다. 국가시험이기 때문 그 명(命)에 따라 전국의 중ㆍ고에서는 고사장을 제공하고 교사들이 감독관 되는 것도 당연히 여겼다.
많은 중ㆍ고교 교사들은 몸은 고달파도 이른 아침부터 시험이 끝나고 점검절차의 늦은 시각까지 감독관으로 임해왔다. 하루 종일 비번 없이 들어가는 시험 수당은 턱없이 적은 액수였다. 교수들이 자신들 대학의 입시 때 받는 관리 및 감독수당에 비하면 ‘교수는 입 교사는 주둥이’라 할 정도의 열악한 대우였다.
그런데도 중ㆍ고 교사들이 묵묵히 수능감독에 임한 것은 수능시험이 국가시험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관ㆍ시행하는 시험이기에 의당 그렇게 해야 하는 일로 여겼다. 열악한 대우에 불만이 쌓여도 ‘나랏일’이기에 군말 없이 따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대학입시가 자율화된다. 정부의 규제없이 각 대학들 자율로 신입생을 뽑는다. 당연히 수능시험도 대교협이 주관ㆍ시행해야 맞다. 대학 교수들의 수능감독관 차출 역시 말할 나위없다.
무엇보다도 국가공무원신분인 국공립 중ㆍ고 교사들이 민간단체인 대교협의 명령을 따를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들의 대학입시업무에 들러리를 서야 할 까닭이 없다.
만약 대학입시 업무에서 손을 땐 교육부가 그전처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통해 수능시험을 주관ㆍ시행한다면 국가기관이 민간단체의 ‘하수인’이 되는 꼴이나 마찬가지이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중ㆍ고에서는 가르쳐 놓으면 될 일이다. 대학들 신입생을 뽑는데 왜 중ㆍ고에서 수능시험을 치러야 하고 교사들이 감독관으로 차출되어야 하는지, 이른바 대학입시 자율화가 던져 놓은 의문이다. 정부규제로부터 자유로워진 대학들은 수능시험 관리시행 책임도 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