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후보의 당선으로 끝났지만, 어김없이 이번도 정책대결의 대통령 선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직도 선거문화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되나 싶어 ‘민주시민’의 한 유권자로서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착잡하기까지 하다. 그 안타까움과 착잡함은 각 대선후보들의 교육, 특히 교원관련 공약을 떠올려보면 허탈감과 함께 분노로 바뀌고 만다. ‘교원들 데리고 장난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아마도 그런 기분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우선 이른바 빅3 대선후보가 내놓은 교원관련 공약을 잠깐 살펴보자. 이명박·정동영후보는 5~10년주기 교원연구년제·유급연구휴가제 도입을 각각 내걸었다. 이회창후보는 교원 10만 명 추가확보가 대표적이다.
교원연구년제는 대학교수들의 안식년제와 같은 개념이다. “재충전을 통한 교원 질 제고를 위해서” 일정기간 유급휴가를 주겠다는 것이 골자이다. 이명박후보는 교원연구년제로 비는 자리를 위해 “교원을 충원하면 자연 교원법정정원도 100% 확보될 것”이라는 ‘야무진’ 청사진도 밝혔다.
그러나 혹 새내기 교사라면 그 말을 믿을까 10년 이상 교단에 선 이들은 믿지 못할 공약이다. 1999년 3월 교육부가 ‘교원안식년제’를 시행할 것이라 밝혔지만, 사탕발림으로 끝난 전례가 있어서다.
“교원안식년제는 교원들에게 재충전 기회를 주기 위해 일정기간(6개월~1년) 수업 등 직무를 맡지 않게 하는 것으로 우수교원들을 선별, 시행할 계획”(한국일보, 1999, 3, 19)이라는 언론 보도가 졸지에 오보로 남게된 셈인데, 한술 더 떠 문국현후보는 전교사를 대상으로 연구년제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이회창후보의 교원 10만 명 추가확보도 교원들 데리고 장난하는 공약으로 여겨진다. 지금 89.1%에 머문 법정정원율을 끌어 올리려면 교사증원이 당연한데도 어찌된 일인지 해마다 전국의 교사들은 ‘감축괴담’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설상가상으로 교육부는 내년부터 기존의 학급 수에서 학생 수 기준 교원배정을 단행했다. 예컨대 중등에서만 전북 60명, 전남 141명이 줄어들게 되었다. 이런 현실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책으로 교원 10만 명 증원을 공약으로 내놓은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명박후보의 수업시수 법제화 역시 그 동안 교원단체들이 꾸준히 촉구해온 현안이다. 그러나 소리만 요란했을 뿐 진척된 것이 없다. 말만 번지르하고, 내용면에서 요지부동인 그 수업시수를 법제화하겠다니 얼마나 반가운 일이겠는가!
그런데도 ‘교원들 데리고 또 장난하나’ 하는 생각밖에 나지 않으니 뭔가 잘못되었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그만큼 역대 정권은 교원정년만 단축시켜놓고 뭐 하나 제대로 해준 게 없다는 불신을 교원들에게 심어줬던 셈이다. 그리고 그 불신감은 ‘이명박대통령’이어도 요지부동일 것 같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공약을 내세워 당선한 대통령, 정부나 집권여당의 자세가 역대 정권과 다를 게 없을 것 같다는 불신이다.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모두 그랬다.
이번 대선은 특히 경제를 강조하는 ‘본질적 결함’을 갖고 있어서다. 먹고 사는 문제인 경제 살리기가 시급하고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교육은 그야말로 백년지대계다. 바로 그 교육의 주체인 교원을 ‘깔보는’ 정책으론 아무 것도 이뤄낼 수 없다.
아무리 이겨야 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목표이더라도, 제발 감당 못할 공약들은 내놓지 않았으면 하지만, 이제 선거는 끝났다. ‘이명박대통령’의 새 정부는 각 후보의 공약들이 40만 교원들, 나아가 온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길 바랄 뿐이다.
새 정부는 대통령당선자가 내놓은 교원연구년제나 수업시수 법제화, 그리고 교원증원 같은 공약이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사탕발림이었는지, 이 땅의 전 교원들, 나아가 온 국민이 지켜볼 것임을 명심하여 실천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