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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제자를 고발한 선생님’의 고민

며칠 전에 한 통의 진정서가 날아왔다. 생활지도 담당을 하면서 늘 부딪치는 일이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내용이었다. 진정 내용은 이렇다. 지난 9월, 수업을 마친 A군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의 교실에 들렀다. 그 반에는 A군의 친구를 포함한 7~8명의 학생이 남아 있었는데, A군은 홀로 그 반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다가 램을 훔친 것이다. 며칠 후 이를 학교 주변의 컴퓨터 부품 상가에 팔았다. 이를 알게 된 학교에서는 학생선도위원회를 열어 ‘교내 봉사활동 5일’이라는 징계를 내렸다.

최근, 이 학교에는 교실과 특별실에 있는 컴퓨터의 램이 도난당하는 사례가 가끔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일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인근 컴퓨터 가게에서 훔쳐 온 램을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학교 학생부장은 램을 사들이는 장물아비가 없다면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역 내의 장물아비(컴퓨터 부품상가)에게 강도 높은 주의나 경고를 하면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서 관할 지구대의 K모 경사와 상담을 했다고 한다. 이미 학교와 관할 지구대는 학생 생활지도와 관련하여 서로 협조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도와줄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일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만 것이다. K모 경사는 처음부터 친절하게 상담해 주는 척하면서 자신의 성과 챙기기에 급급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사건 처리를 해 버렸다. 그것도 학생부장과 피의자의 학부모가 있는 자리에서는 “우리가 서로 협조해서 잘 지도하자.”고 해 놓고 법적 처리를 한 것이다.  졸지에 학생부장은 제자의 범죄를 경찰에 신고한 사람이 된 것이다. 

이에 학부모는 이미 처벌한 내용을 학생부장이 경찰에 신고하여 이중 처벌한 것은 물론이고, 자기 아들을 전과자로 만들었다고 야단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성과주의에 급급한 담당 공무원의 욕심이라고 몰아붙여야 할 것인지, 아니면 범죄자에 대한 엄정한 법 적용을 한 것으로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난감하다.

어찌됐든 결과적으로는 학생부장이 제자를 경찰에 신고한 꼴이 된 것이다. 이에 학생부장은 세상이 너무나 각박하고 살벌하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 동안 학생지도와 관련하여 유관기관이 관할 지구대와 쌓아온 신뢰가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고 생각하여 좌절했고, 이제는 학생의 구명 운동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학부모는 이미 학교에서 처벌 받은 학생을 학교에서 고발하여 범죄자로 만들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고, 심지어는 선생님의 양심까지도 들먹거리며 비난하고 있다. 급기야는 상급기관에 민원을 제기하여 해당학교의 학생부장 선생님은 물론이고, 교장, 교감 선생님의 교육적 신념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나는 이 과정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생부장이 학생지도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경찰과 상담한 내용을 사건 처리하여 ‘제자를 고발하는 비정한 교사’로 만들어 버린 현실이 너무나 밉다. 그러면서도 세상의 야박한 인심을 파악하지 못한 학생부장의 순수함 또한 얄밉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이 학생부장은 여자 선생님으로 올해 처음으로 학생부장 업무를 맡고 있지만 생활지도 및 학교폭력 예방에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선생님이다.

‘제자를 고발한 선생님’이라는 비난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학생부장 선생님이 너무 안타깝다. 지금은 그 학생을 구명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고 있다. 관할 경찰서의 경찰서장과 수사과장을 만나서 선처를 호소하였고, 선생님들과 함께 탄원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학생부장이란 자리는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자리이다. 평소 서로 협조하고 있는 기관의 담당자에게 지도상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훈수를 바랐는데, 훈수나 도움을 받기는커녕 ‘제자를 고발하는 선생’이라는 비난을 받아야만 하는 사회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성과주의가 가져온 비정함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학교와 학생이라는 특수 상황을 이해하고 도와주지 않고 법적 처리만을 고집하는 담당자의 모습이 너무나 매몰차게 느껴졌다.

온정적인 처리가 결코 좋은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열 번 백 번 변하는 우리 학생들의 단 한 번의 실수를 법적처리로 고집하는 현실이 너무 냉혹하다는 생각도 든다. 더욱이 학교에서 충분히 지도한 내용이고 사후 예방적 측면에서 상담을 요청한 내용을 자신의 성과나 실적에 집착하여 처리해 버린 당사자의 비정함이 두렵다. 이 과정에서 홀로 속을 태우고 있을 학생부장의 마음을 헤아리니 가슴이 답답하다. 그도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인데 얼마나 속이 아플까. 비정한 세상에 대한 분통함으로 속을 태우고 있을 선생님의 처지가 너무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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