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교정마다 과일나무를 한두 그루씩 심곤 한다. 꽃을 보며 과일이 커 가는 과정을 관찰하고
수확의 기쁨을 가져보기 위함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교는 과일을 사랑(?)하는 아이들 때문에 생활지도에 애를 먹곤 한다. 심지어 과일나무 한 그루에 여러 학생이 선도대상 물망에 올라 혼쭐나고 급기야 나무를 베어버리는 일도 허다하다.
내가 근무한 A학교에는 복숭아나무가 있었는데 나뭇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아이들의 총애(?)를 받다보니 밤톨만큼 자랐을 때는 이미 복도와 교실에 베어먹다 만 풋 열매가 굴러다니다 못해 실내축구장을 연출하기도 했다.
또 C농고에서는 교내 실습지에서 토마토를 재배해 판매 수입금을 교육청에 불입하는 임무를 맡았었다. 그런데 첫 수확을 앞둔 전날 밤, 잘 익은 토마토들만 도둑을 맞았었다. 즉각 현장감식에 들어갔고 밭에 떨어진 종이 재를 단서로 축산과 3학년인 O군을 적발해 내기에 이르렀다. 노트를 찢어 횃불을 삼은 것으로 추측, 불시 노트 검사를 통해 녀석을 잡을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은 아마도 과일나무가 있는 학교에서는 훈화거리가 될 만큼 흔한 일일 게다. 그래서 교정에 열매가 언제까지 매달려 있느냐가 학생들의 품성과 생활지도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 학교 앞뜰에는 20년쯤 된 모과나무 세 그루가 서있다. 다행스럽게도 매년 이맘때면 난 어김없이 세 그루의 나무에서 스물 너 댓 개의 모과를 따는 영광을 누린다. 잘 익은 탐스러운 열매를 보며 난 2000여명이 넘는 우리 학생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참으로 기특한 녀석들에 미소짓는다. 정녕 파란색 하늘에 걸려있는 저 노란 빛깔의 모과를 보지 못했단 말인가. 울퉁불퉁하지만 고운 향내를 간직한 모과를 만지면서 난 우리 아이들이 모과처럼 진한 향기를 간직한 채 어딘 가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길 기대한다. 아마 다른 학교에 전근해도 모과나무의 추억은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