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후보의 교육공약은 당선된 후에 우리나라의 교육을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가를 제시하는 비전이며 청사진이다. 교육공약은 각 후보마다 우리 교육에 대해서 어떠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집권 후에 교육정책을 어떠한 방향으로 설정해 집행할 것인가를 가름해 볼 수 있는 좋은 잣대이기도 하다.
우리 교육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역대 정권에서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못했던 문제를 나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리고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맞아 반드시 추진하지 않으면 안될 시급한 정책과제는 무엇이며 또 이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등의 질문에 대한 후보들의 개혁적 의지와 실현 가능한 대안이 교육공약을 통해서 선명하게 제시돼야 한다.
대통령 후보의 교육공약은 교육부의 일상적인 정책 집행으로 해결될 수 있는 과제의 수준을 훨씬 벗어나는 큰 그림이어야 한다.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화려한(?) 개혁과제들을 동시다발로 일거에 시행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며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 모든 것을 다 개혁하겠다는 것은 아무 것도 개혁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교육공약은 우리의 교육위기를 타개할 수 있으며, 전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핵심적인 개혁과제와 이를 실천하는데 필요한 소요재정 확보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담겨져 있어야 한다.
대학입시를 포함한 대학의 경쟁력 문제가 대학에 자율을 대폭 허용해 주는 것만으로 해결될 것 같지 않다. 매년 수능시험의 난이도 때문에 울고 웃는 코미디를 연출하지 말고, 엄청난 돈이 들겠지만 이제는 미국의 ETS나 ACT와 같은 출제전담기관을 만들 생각을 해야 한다. 고교평준화의 30년 묵은 이질집단의 수업 문제도 자립형 사립고, 특목고, 자율학교의 수를 확대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교원정년환원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교원정책의 전부는 아니다. 교원의 전문성 신장과 자존심 회복을 위한 종합적인 교원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GDP 대비 6∼7%의 교육재정을 확보하겠다는 정책의지는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어떻게 이 많은 돈을 확보할 것이며 또 무엇을 위해 이 돈을 사용하여 우리 교육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것인가에 대한 설득력 있는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공약은 이미 역대 정권에서 지키지 못한 사안이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구체안이 제시돼야 한다. 한편, 공교육 붕괴로 학교교육이 황폐화 되어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을 안심시키며 희망을 줄 수 있는 별다른 종합 구상을 찾아보기 힘들다.
교육공약은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급조돼 발표되는 듯한 인상이다. 또 마치 깜짝 쇼를 하듯 어느 날 갑자기 획기적인 교육공약이 발표될 수는 없는 것이다. 적어도 수권정당의 면모를 갖추려면 교육공약은 충분한 연구·검토를 거쳐 구체적인 수준까지 공약내용이 준비돼야 하고, 정권을 잡게 되면 바로 추진할 수 있는 단계까지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교육공약은 치밀하게 설계된 교육개혁 프로그램의 대강이라고 볼 수도
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낙오자 없는 교육(No Child Left Behind)'이라는 방대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지 않은가. 준비 없이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모든 후보들이 교육대통령을 표방하고 있지만, 교육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황폐화된 우리 교육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종합적인 개혁프로그램을 내 놓고 국민들의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교육공약이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이나 민원 해결식 공약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잘못된' 교육공약들은 교육발전을 위해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저해요인이 되며, 임기 내내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기도 하고, 무리하게 추진하려다가 엄청난 반발과 혼란만 자초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교육공약은 전문가들에 의해서 사전에 철저하게 검증될 필요가 있다. 우선 공약들이 얼마나 타당성 있게 설정되었으며 또 그 실현가능성은 어떠한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
구체적인 내용의 제시 없이 '무엇 무엇을 개선·검토·지원하겠다'는 공약은 자칫 공약(空約)이 되기 쉬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도 우리는 발표된 교육공약을 통해서 누군가를 선택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