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생활에 미숙할 수밖에 없는 초임교사들. 낭만적인 기대로 임했던 수업과 학생과의 대면, 동료교사와의 관계는 곧 특유의 학교 조직 속에서 좌절과 실망으로 다가오고 초임교사들은 '타협'과 '통제'에 익숙해진다. 최근 류방란 한국교육개발원 부연구위원이 서울 3개 중학교 초임교사 7명에 대한 수업관찰과 면접을 통해 그들이 직면하는 문제와 대처방식을 분석했다.
"발령 후 바로 담임을 맡았어요. 수업도 2학년은 물론 1학년 한 학급까지 맡아 22시간을 했어요. 업무분장도 모두 기피하는 교무일지와 가정통신문을 맡았죠. 만날 교무실 칠판에 적힌 출결 확인해야지, 가정 통신문 하나 나가려면 장부에 기록해야지, 결재 받아야지…."(M중 B교사·국어)
초임교사들이 가장 먼저 직면하는 문제는 학교 조직이 교육활동보다 '업무' 처리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초임 교사의 특수성은 철저히 무시된 채 경력 교사들도 기피하는 궂은 일, 늦출 수 없는 일을 맡게 된다.
작년 3월 발령 난 M중 D교사(영어)에게는 학생부 전산업무가 맡겨졌다. 하지만 전임 교사가 전출하는 바람에 아무도 전산 입력·관리 방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D교사는 "전임 선생님께 문의 전화를 수없이 했다"고 토로한다. 더욱이 D교사는 업무 분장 상 교육정보부 소속이었지만 영어 교사이기 때문에 영어과에서 주관하는 영어 경시대회 등 각종 행사를 게시판에 알리기, 외부 손을 안내하는 일까지 하고 있다.
S중 국어과 초임 E교사는 도서실 업무가 주어졌다. "일에 일정한 틀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다른 선생님께 여쭤봐도 모른다고 하시고…학교에 와서 차분히 앉아 쉴 수 있는 시간이 10분도 없어요"라고 한숨을 쉰다.
과중한 업무 부담 탓에 이들 교사는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할 수도 없다. 교직에 들어오기 전에 학원 강사 경험이 있는 B, E 교사는 "학원에서보다 수업 준비할 시간이 더 없다"고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류방란 부연구위원은 "당장 수업 준비를 못하더라도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일이 빈번하다"며 "초임교사들은 교직 생활의 시작부터 교육활동에 전념하도록 하지 않는 학교 조직을 경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초임교사들은 처음에 학생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자율성을 인정함으로써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그러나 그런 낭만적 기대는 쉽게 깨지고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서 학생 '통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처음에는 페스탈로치나 루소를 꿈꿨어요.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자율적인 성장을 옆에서 도와주며 모범을 보이려고 애썼어요. 그래서 청소도 같이 했죠. 그런데 아이들은 오히려 선생님이 다 하는구나 생각하면서 청소를 더 안하고 교실을 엉망으로 만들더라구요. 강압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N중 G교사·사회)
M중 C교사(사회)는 학생들이 초임교사를 "만만하게 본다"고 말한다. "교칙을 어기고 교복을 줄여 입은 몇몇 여학생에게 주의를 줬더니 지네들끼리 내가 '재수 없다'는 쪽지를 돌리며 적대시하더군요. 하도 답답해 선배 교사에게 조언을 구했죠. 학부모를 불러 학생의 태도를 알리고 지도를
부탁하는 한편 학생들의 근황을 적어 가정에 알리고 학부모의 확인 도장을 받게 했어요.
그랬더니 조용하더군요." 발령 첫해 학생 통제에 어려움을 겪은 C교사는 올해 '생활지도부' 근무를 자청했다. '무서운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D교사도 얼마 전 학생들에게 우롱 당한 사실에 분개한다. "수업 중에 수첩을 돌리며 욕을 쓴 아이들에게 주의를 줬죠. 그랬더니 교무실로 찾아와 무릎 꿇고 빌더라고요.
그렇게까지 하니 가슴이 아파 잘 타일러 보냈어요. 그런데 그 애들 담임 선생님 말씀이 다 수작이라는 거예요. 한 두 번이 아니라면서…. 정말 사람으로 대하고 좋은 모습 보여주면 따라올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와서 알았죠. 정말 아니에요."
그래서 S중 F 교사(수학)는 통제 수단으로 벌점제를 선택했다. 그는 "벌점제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것마저 안 할 수 없으니까요. 결코 그런 교사는 되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새 점수로 아이들을 위협하고 소리나 질러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며 허탈해했다.
류 연구위원은 "지도 방식에 회의를 느낀 초임교사들은 선배교사의 통제 방식을 배우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학생에게 얕잡아 보이지 않는 전략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더욱이 학교조직은 학생들을 '잡아' 줄 것을 요구해 초임교사들이 이를 도외시할 수 없게 만드는데 실제로 M중에서는
'풀어주는' 교사를 능력이 없는 교사로 평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면담결과에서도 초임교사들은 "학생들을 존중하는 방법을 먼저 터득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잡는' 방법을 터득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고 털어놨다.
대학에서 수업에 대해 가졌던 이상과 기대도 현실 속에서 수정하게 된다. 전공 지식은 많지만 그것을 가르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수업 방법에 동화되기 쉽다. 실제로 초임교사들은 수업을 하며 예전에 중등학교 시절 자신을 가르쳤던 은사의 방식을 암암리에 따르게 된다고 말한다.
F교사는 "대학 때 구체적으로 수업 방법을 배운 게 없어요. 우리끼리 한 두 번 얘기만 해봤지 실제로 실천해 볼 기회도 없었고요. 발령 나고는 내가 중고등학교 때 선생님께 배웠던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배운 '이상적'인 수업 모형을 적용하려다 학교, 학생의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혀 좌절되는 경우도 많다. M중 A교사(국어)는 "처음에 모둠 수업을 했어요. 그런데 예상과 달리 소수만 수업에 참여하고 무임승차하는 애들이 오히려 수업분위기를 흐리더라고요. 또 모둠별 평가를 하다보니 제대로 참여하지 않고도 점수를 받는 문제가 생겨 계속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D교사는 같은 학년 영어를 나눠 가르치는 선배 교사와 수업 방식이 달라 곤욕을 치렀다. "why don't you란 표현이 있어요. how about ∼ing로 바꾸는 게 시험에 나왔어요. 근데 전 안 가르쳤거든요. 요즘은 나선형 교육과정이라고 점점 심화되어 나오잖아요.
그래서 하나가 나왔을 땐 하나만 가르치고 두 개 가르치지 말라고 배웠거든요. 그런데 시험에 안 배운 게 나왔으니 아이들이 들고일어난 거죠." 결국 D교사는 자신의 이론적 입장을 철회해 '같은 표현을 몇 개씩 가르치기로' 했다. 그는 "선배 교사에게 자신의 방식을 설득하기보다는 자신이
맞추는 게 갈등을 피하고 학생의 불만을 쉽게 해소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류 부연구위원은 "초임교사들이 다양한 교육방식을 철회하는 경향은 교사간 차이를 경계하는 학교 조직의 특성에 의해 더욱 고착화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같은 학년을 가르칠 경우 비슷하게 가르쳐서 겉으로 드러나는 학생들의 학업 점수 차가 크지 않아야 학생이나 학부모의 불만을 사지 않으므로 학교 조직은 예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경험이 없고 부족한 초임교사들은 시행착오를 거쳐 배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육보다 급한 업무를 요구하고 △학생 통제를 우선시하며 △교사간 차이를 경계하는 학교 조직은 열악한 교육여건보다도 초임교사들의 의욕과 시도를 좌절시키는 걸림돌이다.
류방란 부연구위원은 "학교 조직이 초임교사들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변화되려면 우선 학교 내 상급자와 교사들이 교육활동 중심의 학교 운영을 위해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