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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누구도 구경꾼이어서는 안 된다


2월 28일자 동아일보 사설에 <학교폭력 대책, 학교는 구경꾼인가>라는 사설을 읽으면서 언론이 학교폭력의 실상과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쓴 사설인지 궁금하다. 해마다 정부 당국이나 학교에서는 학교폭력 근절 방안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지만 여전히 증가 추세이고, 피해의 정도가 심화되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학교폭력의 일반적 추세는 가해학생은 감소되고 있으나 학교폭력의 피해를 호소하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 학교폭력 피해 장소 또한 학교 울타리를 넘어 등하교길이나 학원 주변 , 오락실, PC방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1:1 멘토링제 운영, 대안교육 위탁교육 실시, 친한 친구 교실 운영 등의 대안 교실을 운영하고, 또한 주변 환경이 취약하고 비행 발생 빈도가 높은 지역에는 폭력 전담 경찰관을 배치한다고 한다. 또한 학교에서는 학교폭력 담당교사를 우대하는 방안을 마련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관계 기관의 노력에 대하여 동아일보에서는 <학교폭력 대책, 학교는 구경꾼인가>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학교 현장의 선생님들과 학교폭력 예방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그 사설이 갖는 왜곡성에 대하여 당황하였다. 동아일보가 지는 대중적 전파력이 크기에 더욱 그렇다. 사설에서의 지적처럼 지금까지 충분한 노력을 해왔는가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학교폭력 예방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교사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전제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웠다. 아마 조금이라도 고통을 이해한다면 이와 같은 논조의 사설은 내지 않았을 것이다.

언론이나 일반 사회에서는 학교폭력을 단순히 학생들에 대한 학교 생활지도의 부재에서 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시각은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이는 단순히 생활지도상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선,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와 행동 방식에서 영향 받은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상식과 법을 초월한 이기적 자기중심성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모습을 바라보고 자라는 우리 아이들이 어찌 이웃을 생각하고 친구를 생각할 것인가. 나만 즐겁고, 나만 행복하면 그만이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보편적인 원칙과 상식에 동의하지 않고 특혜를 주장하는 사람이 많은 한 타인에 대한 폭력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떼법’이 통하는 사회에서는 보편적인 원칙과 상식이 살아날 수 없다. 개인주의와 집단적 이기주의만이 살아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점차 민주화로 지향하면서 욕구 분출 과정에서 적절한 방법에 대한 학습이 없었다. 목적만 그럴 듯하면 방법이 어떠하든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민원부서에 있는 공무원들이 민원인들의 유형 또는 무형의 폭력에 시달려도 그에 대한 뚜렷한 대책이 없다. 오히려 매끄럽게 해결하지 못한 공무원이 혼줄이 나는 구조에서는 은근히 폭력이 조장되고 있는 것 아닌가. 은연중에 우리 사회에는 이런 류의 학습이 전수되고 있다.

다음은 ‘잘못’에 대한 상응한 벌칙이 없는 것이 문제다. 아무리 좋은 대책이 나와도 잘못에 대한 적절한 벌칙이 없는 한 그것은 대책이 될 수 없다. 초중등육법과 시행령에 의하면 의무교육 대상자에 대해서는 특별한 벌칙이 없다. 영악한 학생들은 이런 점을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다. 최근 인권문제가 부각되면서 더욱 그렇다. 이런 문제점을 파악한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무관용의 원칙(zero tolerance)'을 통하여 잘못에 대한 철저한 책임을 지게하고 있다. 최근에 제시한 위탁교육, 대안학급을 적극적으로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학교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을 들 수 있다. 학교폭력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는 이중 삼중고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교사이면 누구나 이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 중에서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지도해야 하는 사람이 학교폭력 담당교사이다. 여느 교사와 마찬가지로 학습지도에 부담감을 가져야 하고, 학생사고 발생시 해결과정에서 지게 되는 책임 또한 막중하다. 교내 생활지도, 교외 생활지도를 해야 하고, 때로는 파출소, 법원에도 가야한다. 이런 현실이고 보면 특별한 혜택이 없는 학교폭력 담당은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피하고 싶은 일이다. 이에 대하여 교사의 소명의식을 들먹이면서 탓하기에는 너무 옹색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책으로 우대 방안을 마련한 것은 늦은 감을 탓해야 할 일이지 비난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동아일보의 지적대로 선도의 일차적 책임이 학교에 있다는 것을 부인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에서 밝힌 것처럼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 학교 탓만으로 돌리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주체로서 책임 회피에 다름 아니다.

학교폭력 근절은 국가적 과제이고,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여야 적절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교사의 감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여전히 제도적 한계에 부딪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생활지도의 현실이다. 그런 만큼 학교폭력 근절의 절대적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학교에 엄격한 법치 구조를 도입해야 한다. 미국의 ‘무관용 원칙’처럼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철저하게 책임지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사람에게만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의무나 책임은 없고 권리만 강조되는 사회에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을 수 없다. 학교 공동체가 머리를 맞대고 법을 만들고 이해 대한 철저한 이행을 촉구해야 한다. 위반자에 대한 철저한 법치의 원칙을 도입해야 한다.

둘째, 학생 학부모의 공동책임제를 도입하여야 한다. 최근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아이들 교육이 소홀이 되고 있다. 학교에서만 책임지는 생활지도로서는 한계가 있다. 음식점에서 제멋대로 뛰어 다니는 아이들이 많은 한 학교에서 교사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학생이 많기 마련이다. 공공의 이익과 안녕에 부합되는 교육이 가정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 지도 잘못에 대하여 교사의 징계를 말하고, 교장의 전보를 말하면서 늘 부모의 책임과 사회의 책임은 외면하는지 모르겠다. 부모가 책임지고 가정에서부터 자녀교육에 최선을 다하는 풍토를 만들어 가야 한다.

셋째, 교사의 권위 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사 스스로의 전문성을 신장하여 권위를 갖도록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생 지도에 대한 상응한 권한을 주어야 한다. 실제로 학교폭력으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겨 사법기관에 이첩되면 교사는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사법적 판단을 받아서 학교에 돌아오기까지에는 진행과정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교사가 해결과정에 적극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교사가 할 수 일은 제한적이면서 늘 책임만 지라는 식의 논리는 맞지 않다.

동아일보의 사설대로 학교를 구경꾼으로 만들지 말고 적극적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학교폭력이 일어나면 가·피해자로 나뉘어 민형사상의 판단을 기대하는 학부모와 많은 한 교사의 역할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불안한 환경을 개선하는 데 모두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야 한다. 학교 선생님이 책임을 가지고 지도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학교 폭력이 학교 현장의 교육력을 현저하게 약화시키는 주요 요인임을 감안한다면 누구의 책임으로 서로 탓할 일은 아니다. 모두가 손을 맞잡고 제도적, 법적 미흡함을 보완하여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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