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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우리 어린이들을 어떡하나! 걱정하신 선생님

우리 사회에서 자식들이 부모의 마음을 거스를 때면 부모님들은 "너희들이 제풀에 저절로 큰줄 알지만 너를 키우기 위해 고생한 것은 하늘이나 알고 땅이나 안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자식 키우는 수고가 얼마나 많은가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우리의 어린이들은 키운 것이 아니라 자랐다고 하는 것이 더 옳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년 전 지금의 미동초등학교 뒷골목에는 나이가 열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이 모여 앉아 민족의 장래가 어떠니, 일본이 어떠니 하며 토론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 어린 나이에 소년입지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독서회를 열기도 하는 등 자기들딴에는 꽤 심각한 토론을 하였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는 이 회를 이끈 리더는 방정환이었습니다.

그 후 방정환은 21살이 되던 해인 1920년에 일본 동양대학에 유학하여 그곳에서 천도교 청년회 동경지회장을 맡으면서 어린이에 관한 문제를 공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후 그는 1921년에 동경유학을 포기하고 귀국하여 "학대받고, 짓밟히고, 차고 어두운 속에서 우리처럼 또 자라는 불쌍한 어린 영들을 위하여 그윽히 동정하고 아끼기 때문에 어린이 운동을 전개한다"고 했습니다. 이후 방정환은 2년 동안 노심초사끝에 1923년 5월 1일에 최초로 어린이 날을 정하고 행사를 갖는데 성공했고 동화의 집필과 잡지의 제작을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그의 노력으로 어린이날은 우리 역사에 막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에 십계명이 있듯이 천도교에도 6가지의 계율이 있는데 그 네번째 계율에는"어린아이를 때리지 말라. 이는 하느님을 치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방정환의 어린이 활동에는 동학사상이 베어 있으며, 그가 어려운 시대에 모든 고난을 참으면서 어린이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종교적 정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도 할 수 있겠습니다.

영양은 말할 것도 없고 교육이라든가 애정 또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면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던 당시한국의 어린이들을 위해서 지칠줄 모르게 활약했던 방정환은 1931년 7월 신장염과 과로로 인한 고혈압으로 쓰러져 32살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방정환의 마지막 임종을 지켜보던 동지들에게 "우리 어린이들을 어떡하나! "하면서 참아 눈을 감지 못하였다고 하니 아이들에 대한 애정은 오늘 교육을 담당한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린이 날을 맞이하면서 세계의 굶주리고 있는 어린이들을 걱정하기 전에 세계10위 경제력을 가진 국가이면서도 여러가지 이유로 아직도 굶주리고 못배운 채 울고 있는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 있지는 않은가 다시 한 번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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