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평생을 부부교사로 살아왔네요. 그래서 겪은 불편도 많았지만 후회보다는 잘 선택했다는 뿌듯함이 더 듭니다. 아이들은 우릴 늘 대화를 나누는 부부로 그리고 풋풋한 교육동지로 엮어주었어요."
권옥자(전북 김제 금산초)·김광성(전주교대부설초) 교장 부부는 꼭 37년을 교단에서 같이 보냈다. 교사 열 명 중 한 두 명은 부부교사라지만 교감을 거쳐 같은 날 교장까지 함께 됐으니 그 인연이 사뭇 남다르다.
전주교대 입학식 날 눈 맞아 7년 연애 끝에 결혼한 동창생 부부교사. 손에 든 출석부조차 어색한 햇병아리 시절에도 '부부교사'는 힘든 학교 생활을 절반씩 덜어주고 사랑은 두 배로 키워주는 특권처럼 여겨졌다.
"반 애들 얘기며 수업 고민에 안방은 교무실이 되고 식탁 위에서는 매일 교사협의회가 열렸었다"는 김 교장은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시행착오도 줄이면서 교사로서 함께 커갈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한다.
학년초 환경정리를 할 때면 권 교장은 늘 모든 자료를 남편 것까지 두 개씩 만들었다. 그러면 글씨를 잘 쓰는 김 교장이 그걸 놓고 타이틀을 두 개씩 썼다. 1학년을 많이 맡았던 권 교장이 입학원서를 집으로 가져오면 김 교장은 말없이 아이들의 생활기록부를 써주며 이름과 가정환경을 외우곤 했다. 또 운동회가 돌아오면 여 교사가 없던 남편 학교의 무용선생은 밤마다 권 교장 몫이었다.
"매스게임 도안을 놓고 밤새 남편을 가르치면 다음날 내가 가르친 만큼 아이들에게 입으로 지도했었다"는 권 교장은 "어쩌다 술자리가 있어 다음 진도를 못 배우고 출근하는 남편이 무척 곤혹스러워했다"며 웃었다. 7년 전부터 같이 교감생활을 하고 3년 전인 99년 9월 함께 교장이 되면서 정보교환은 더 빈번해졌다.
"당신 학교 수행평가 내용 중에 3학년 것 좀 이메일로 보내세요."
"졸업식 때 할 학교장 훈화인데 어디 고칠 데 없을까?"
"도서관에 책이 많으면 좀 나눠주지 않을래요?"
"우리 학교에 ××문제가 있는데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어?"
부부교사로 살며 불편하고 속상한 일이 없을 리 없다.
"교사들에게 잘 대해주면 '마누라가 선생이니까 그러는 게지' 하고 싫은 소릴 하면 '마누라가 선생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뒤에서 수군거릴 때도 많았다"는 김 교장은 "부부교사는 연예인보다 더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구설수에 오르지 않게 신경 써야 한다"고 얘기한다.
교사로, 엄마로, 주부로 1인3역을 해야 하는 권 교장은 아쉬움이 더 남는다. "수업 때문에 정작 첫애 학교 학부모 회의에는 계속 빠져야 했어요. 그런 어느날 아이가 가방을 팽개치면서 '엄마! 선생님 안 하면 안 돼'하고 울먹이는데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는 권 교장은 "평생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를 제대로 못해준 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부부교감, 부부교장이라는 '훈장' 때문에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았다.
"여보세요, 교장선생님 좀 바꿔주세요."
"어떤 교장선생님요?"
"예? 교장선생님 안 계세요?"
"그러니까 어느 교장선생님을 찾으시는데요?"
"이상하네...전화 잘못 걸었나봐요…."
가족들은 요즘도 전화를 붙잡고 실랑이를 벌이곤 한다. 전북에선 이미 부부교장, 동창교장으로 알려진 권 교장과 김 교장. 하지만 "학생들이 있는 한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풍성하고 학교가 있는 한 우리는 늘 젊고 활기차다"는 이들에겐 '잉꼬부부'라는 말이 훨씬 더 어울린다. 얼마 전부터는 골프연습장에도 함께 나가기 시작했다. 퇴직 후에도 늘 함께 걷고 싶어서다.
권 교장과 김 교장은 요즘도 미혼 남녀 교사나 예비교사들을 만나면 "옆에 배필이 있다"며 부부교사 예찬론을 편다 "이 땅의 많은 교사들에게 꼭 권하고 싶어요. 부부교사가 되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아니 기회를 만들어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