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병아리 총각 교사였던 1985년, 첩첩 산골에 위치한 전남 구례산동중에서 근무했을 때의 일이다. 우리 학교는 전교 12학급 정도의 아담한 규모였다.
난 초임 발령을 받은 총각 과학 선생님과 함께 근처의 하숙집에 방을 얻어 생활했다. 교장 선생님은 젊고 패기 넘치는 젊은 교사들이 왔다고 하시며 학생 생활지도를 책임지라는 임무를 맡기셨다. 총각이고 학교 근처에 살았기에 아침 일찍 출근해 교문 등교 지도와 복도 순회 지도 등을 열심히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복도에서 크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 떠든 학생들을 불러 이유를 알아본 후 야단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한 학생의 머리가 무척 길고 복장도 불량해 보였다. 난 학생에게 "너 당장 머리 짧게 깎고 와서 검사 맡아!"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머리가 길어 야단을 맞던 그 학생은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렸고, 주위 학생들의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지면서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화가 나 있던 나는 "빨리 안 가?"하며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러 울고 있는 학생을 기어이 밖으로 내보냈다.
학생이 울면서 나간 다음, 벌을 받던 한 학생이 용기를 내 내게 말했다. "선생님, 걔는요, 태어날 때부터 한쪽 귀가 없어서 머리를 기르고 다녀요."
그 말을 들은 나는 너무 미안하고 당황해 한 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학생을 찾으러 뛰어 나간 나는 한쪽 구석에서 울고 있던 그 아이를 발견했다.
"정말 미안하구나. 진작 말을 하지 그랬니…." 진심으로 사과한 나는 아이의 상처가 크지 않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내 경솔함을 자책했다.
그 사건 이후로 난 그 아이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이해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하지만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지금도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야지 하는 다짐을 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