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병우입니다. 며칠 뒤 아프리카 케냐로 떠나는데 가기 전에 잠시 뵙고 싶습니다." "아니 장가 안 가고 외국 나가니? 나는 괜찮으니 부모님께 얼른 가거라. 힘들텐데 내겐 다음에 애인이랑 같이 와." "아니요, 선생님. 이번에 나가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집에 가기 전에 꼭 뵙고 싶습니다."
그날 아침, 19년 전 제자인 병우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목욕탕에 다녀왔다. 더 젊어 보이려고 말이다. 집안 정리도 말끔하게 했다.
1983년 고흥에서 6학년 2학기 때 반장을 했던 병우는 자그마한 키에 일도 잘 하고 손재주가 있어서 부자가 될 거라고 했었는데, 자신의 길을 역시 잘 개척해 나가고 있었다. 따끈한 밥이라도 먹이고 싶어서 오랜만에 누룽지가 생기는 냄비밥을 안치고 간단한 식사 준비를 했다. 서른 두 살의 병우는 이젠 사회인이 다 되어 있었다. 같이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니 어느 새 삶의 지혜를 다 갖춘 건실한 청년이 아닌가?
이미 결혼 준비까지 마치고 재도약을 위해 해외에 나간다는 다부진 각오를 들으니 자랑스럽기만 했다. 하룻밤 재우지도 못하고 고향에 가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그런데 배웅 나길 길에 녀석이 다짜고짜 선물을 안겼다.
"선생님, 이 소뼈 고아 드실 때마다 제 생각하세요. 내일 전화 드리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좀더 맛있는 것을 해 먹이지 못한 미안함이 일렁였다. 부디 먼 타국에서 건강하기를 빌었다. 제자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배 아파 낳은 아이들은 아니지만 애잔한 생각이 든다. 손끝이 다 닳도록 부지런히 사업에 매달려 살아온 그 젊음 앞에 부디 행운이 있기를! 돌아오는 날까지 부디 건강하기를! 가슴으로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