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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벼 타작하는 초등학교

어제 우리 아파트와 이웃한 초등학교 앞을 지나려니 누렇게 익은 벼를 한 움큼씩 쥔 학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학교 안으로 들어서자 운동장에서 벼 타작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한데 어우러져 벼 타작하는 모습은 보기 드문 광경이다. 발로 돌리는 재래식 탈곡기로 벼를 터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조그만 절구를 하나씩 든 학생들이 둘러앉아 벼를 찧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한편에선 떡메로 쳐서 떡을 만들고 뻥튀기 아저씨까지 참여해 펑 소리가 터질 때마다 하얀 튀밥이 쏟아졌다. 여문 벼를 베어 탈곡하고 도정을 해 양식이 되는 일련의 과정을 어린 학생들이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평소 이 학교를 지날 때마다 선생님들의 세심한 노력의 흔적을 교정 곳곳에서 느꼈다.

우선 이웃 초등학교는 교정 곳곳에 꽃을 많이 가꾼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도 아름답다고 했던가. 교실 앞 화단은 물론이고 정문으로 이어진 길옆에 놓인 화분에도 항상 꽃이 피어 있다. 요즘은 노랗고 하얀 국화가 함초롬히 폈고, 여름부터 가을이 익어가는 지금까지 천사의나팔꽃이 학교를 환하게 장식한다. 나는 그 천사의나팔꽃이 내뿜는 은은한 향기가 좋아서 운동장을 걷다가 가끔은 화분에 다가가 그윽한 향기에 취한다. 사방이 고층 건물로 둘러싸인 삭막한 주위 환경을 예쁘게 꽃을 가꿔 학생은 물론 동네 주민에게도 즐거움을 안겨주는 학교가 고맙다.

또 여느 학교와는 다르게 이 초등학교는 벼와 보리를 심고 길러서 학생들에게 농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관찰할 체험기회를 만들어 준다. 학교에 농지로 쓸 만한 널찍한 공간은 없으니 빨간 고무대야를 이용한다. 지도 교사가 여러 고무대야마다 이름을 붙여주고 학생들이 책임제로 가꾸게 하는 것 같았다. 학교를 오가며 지켜봤는데 봄에는 고무대야에서 보리가 자라 누렇게 익었고 여름에는 찰랑거리는 물에서 모를 심고 마침내 가을이 돼 벼가 한가득이다. 여름에 ‘과연 저 모가 제대로 자랄까’ 싶었는데 가을이 되자 건물 현관부터 정문에 이르는 길옆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허수아비가 세워졌다. 시골학교에서 볼 법한 전원풍경을 학교 안으로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정겹다. 아마도 어제는 학생들이 그 벼를 거둬 타작하고 탈곡된 쌀로 음식을 만들어 봄으로써 수확의 기쁨을 맛보는 귀한 경험을 한 것 같다.

자연은 드러나지 않는 큰 스승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계몽사상가 루소는 <에밀>에서 ‘대자연에 견줄만한 교육자는 없으며 인간도 자연의 섭리에서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의 교육사상은 한마디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도시 중심으로 발전했고 요즘 아이들은 자연보다 아스팔트가 친숙하다. 자연과 멀어져가는 아이들이 안타깝다.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자연은 희생되고 도시의 편리함에 길든 우리 아이들에겐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끊어진 시골에는 쓸쓸히 노인들만 남아 있고 빈집이 하나둘씩 늘어간다.

오로지 좋은 학교, 편한 직업에 목숨을 거는 세상에서 어린아이들은 입학도 하기 전에 공부에 내몰려 소중한 동심은 무참히 희생된다. 아이들에게 내가 먹고사는 곡식들이 어디서 났고 어떻게 얻어지는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이런 아이들에게서 어떻게 감사한 마음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세상인심이 점점 거칠고 삭막해져 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런 의미에서 이웃 초등학교의 벼 타작 한마당이야말로 사려 깊은 선생님들이 마련한 소중한 행사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고무대야지만 모를 심어 벼를 길러내기까지 학생들은 많은 정성을 기울였고 작은 씨앗에서 결실을 보는 자연의 섭리를 체험했을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한 톨의 쌀을 얻기 위해 많은 땀방울이 필요함을 깨닫지 않았겠는가. 책을 통해 굳이 어렵게 설명하고 강조하지 않아도 학생들에게 농부들이 흘리는 땀을 이해하며 감사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가슴에 싹트지 않았겠는가. 이 모든 경험이 귀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그리고 소중한 깨달음으로 남아 평생을 간직하지 않겠는가.

우리 곁에 이런 학교가 있음은 자랑할 만한 일이다. 진정 학생들에게 바람직한 인성을 심어주기 위해 창의적인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선생님들께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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