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이란 사람의 됨됨이를 일컫는다. 활달함과 새침함, 대범함과 소심함, 인자함과 괴팍함, 성실함과 게으름 등이 때와 곳과 대상에 맞춰 대소고저(大小高低)로 드러나는 것이다. 성실한 사람은 풍요로운 인생을 살게 되고, 괴팍한 사람은 외로운 생활을 면치 못하게 된다.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이 있다. 인생은 능력으로 선다고 확신한다. 실력이 인생을 만들어내고, 인성은 그것을 돋보이게 만들 뿐이라 믿는다. 위대한 성공신화를 쓴 이들을 보면 모두 뛰어난 능력자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성 쌓기보다는 실력 쌓기에 몰두한다.
인성이 인생을 세운다
하지만 인성은 능력보다 근본적이다. 일의 성취 여부보다 어떻게 성취했느냐가, 삶의 영위 여부보다 어떻게 살아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얼마나 이루어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리했느냐가 인생평가의 기준이다. 이순신 장군은 23전 불패의 전적이 아니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은 용기 있고 충성스런 사람됨으로 선 것이다. 위인들이 추앙받는 이유는 그것을 올바른 방식으로 이뤄냈기 때문이다.
결과로 과정이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이 결과를 올바로 세워준다. 그것이 우리 삶의 올바른 법칙이다. 인성이 인생을 세워준다. 그래서 우리에겐 인성을 세우는 교육이 요청된다. 맡은 바 일을 잘 해나가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써 우리 청소년의 인성을 갖춰주는 교육이 절실하다.
인성은 어떻게 세우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인성은 인생으로써 세워진다. 사람됨은 삶을 통해서, 삶으로써 제대로 만들어지는 묘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깊은 깨달음이다. 덕은 덕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길러진다. 사람의 성품은 일상에서의 실천과 그에 대한 성찰, 그리고 그것의 습관화를 통해 올바르고 효과적으로 길러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이 인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어떻게 인생을 사느냐가 어떠한 인성을 갖느냐를 틀 지어준다. 살아감이란 사람과의 관계이다. '소학'에서 말한 집 안을 깨끗이 하고 출입인사 드리는 예의(灑掃應對進退之節)와 부모와 주변인들에게 사랑으로 대하는 도리(愛親敬長隆師親友之道)를 실천하는 것이다.
사람됨은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내 안에 하나로 모여진 상태다. 이것들은 삶 속에서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면서 길러지는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이 생활하고 공부하는 학교와 가정과 동네와 운동장이 모두 이러한 인생의 장이 되는 것이다. 한 아이를 교육하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동원돼야 한다는 말이 괜한 주장이 아니다.
삶으로 기르는 인성교육을 하자
인성이 인생이다. 그리고 인생이 인성이다. 우리 청소년의 인성은 그의 삶을 일궈나가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그의 인성은 그가 살아가는 삶에 의해서 가다듬어져 간다. 인성과 인생의 이 역설적 관련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여기저기 소란스러운 인성교육의 외침과 실행은 이 같은 역설을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체계화된 인성함양 프로그램으로 사람됨을 길러내려는 노력은 계속해서 진행돼야만 한다. 우연적 발달이나 타고난 성향에만 인성의 함양을 의존하기에 우리 삶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적용시키는 노력과 함께 우리 인생 전체로서 인성을 가꾸려는 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인성은 한 개인의 사람됨이며, 사람됨은 생의 저잣거리를 힘차게 헤쳐나감으로써 더욱 알차고 훌륭히 길러질 수 있다. 인생으로 기르는 인성교육을 하자. 우리 삶 전체로 가르치자. 인생을 인성화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