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교사가 장학사 연수를 마치고 밝은 얼굴로 돌아왔다. 지난해부터 시험 준비에 애쓴 결과 합격의 영예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장학사가 되는 일이 곧 교육전문직이 된다는 생각을 부추기는 현실이 안타깝다. ‘교육전문직 임용예정자 직무연수’라는 이름만 봐도 그렇다. 장학사가 되는 일이 교육전문직이 되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실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교육전문직이 아니라는 말인가?
의사나 판사, 검사들은 현장에서 자신의 전공을 발휘하는 사람이라고 당당히 전문직이라고 부르고 존경해준다. 그런데 교육계는 가르치기에 힘쓰는 교원보다 장학사나 장학관이 돼서 교육행정을 하려는 사람에게 전문직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장학직에 종사하는 교원들에게 전문직이라는 이름을 부여한 것은 교육부에서 시작된 것으로 안다. 교육부 직원 중 행정직으로 들어온 사람과 교실 현장에서 가르치다가 들어온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전문직’이라는 이름을 붙여 우대해줬다. 그러다보니 시도교육청에서 근무하는 장학사, 장학관을 전문직으로 구분해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 대신 현장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교사, 교감, 교장이라는 명칭만 사용해왔다.
그간 정부와 교육부는 ‘수요자 위주의 교육’, ‘고객만족을 높이는 교육’ 등 교사들의 자존심을 구기는 명칭을 많이 부여해왔다. 수요 공급의 원칙으로 교육을 바라본다면 학교는 물건을 공급하는 곳밖에 되지 않는다. 사람은 물건이 아니고 학교는 물건을 만드는 공장도 아니다. 교육부가 물건을 만드는 곳을 닮으라고 학교에 강요해온 것이다. 또 ‘고객만족을 위한 교육’은 어떠한가? 학생이 고객이 된다면 선생님은 물건을 파는 점원밖에 되지 않는다. 점원들도 물론 본받을 점이 있다. 일한 만큼 버는 것, 애프터서비스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고객은 왕’이라는 말처럼 선생님을 땅에 떨어뜨리고 눈치 보기를 강요하는 교육이 이뤄진다면 소신을 가진 교육자가 어떻게 열정과 사랑으로 가르칠 수 있을까? 물건만 팔면 그만이라는 점원을 닮은 선생님이 하루에 몇 명씩 늘어나고 있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담배의 유해성을 설명해주지 않는 슈퍼마켓 점원이라고 생각해봐라. 선생님은 담배를 팔기 전에 유해성부터 설명해줘야 한다. 아이스크림을 팔기 전에 인스턴트 식품의 유해성을 설명해줘야 한다. 그것이 선생님과 점원의 차이이다. 그런데 고객을 만족시키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얼마나 집요하게 학교를 다스렸는가? 고객이 항의하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쉬쉬하도록 무마하는 것을 종용하는 것이 오래된 교육청의 관행이었다.
수업도 하지 않는 장학사나 장학관에게만 교육전문직이라는 명칭을 붙여주는 일이 계속된다면 교사들은 자신의 직업을 전문직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어떻게 이런 교사로부터 질 높은 교육을 기대할 수 있는가? 장학사나 장학관에게 승진이나 보직의 우선권을 주는 것도 평등권에서 어긋나는데 전문직이라는 명칭까지 빼앗아 가 현장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교원들에게 사기저하와 자책감까지 심어줬다.
간호사도 선생님, 미용사도 선생님, 학습지 교사도 선생님이 됐다. 그러면서 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에 의해 ‘샘’으로, 전문직이라는 이름은 교육부와 교육청에 의해 빼앗겨 버렸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교원이 중심에 서야 한다고 말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제 교실과 학교에서 소신과 열정을 다해 말없이 일하는 교사에게 전문직이라는 명칭을 되돌려줘야 한다. ‘교육전문직 임용예정자 직무연수’를 ‘장학사 임용예정자 연수’로 고쳐 사용하고 ‘1급 정교사 교육연수’, ‘교감 임용예정자 직무연수’ 등에 ‘전문직’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사용하기를 교육부가 앞장서 주기 바란다.
학교든 가정이든 가장 먼저 가르칠 일은 존경하는 일이다. 존경심 회복은 교육의 기본이다. 그런데 존경심은 자신을 사랑하는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남으로부터 받는 정서적 교감에서 시작된다. 남을 존경하지 않고는 자신을 존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존경심은 감사하는 마음이요 사랑하는 마음, 행복해하는 방법이다. 존경하지 않는 부모 밑에 자란 아이가 바른 그릇이 되기 어렵듯이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고 어떻게 교육이 이루어질까?
교원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은 교육의 기본이다. 전문직이라는 작은 명칭을 현장 교원에게 되돌리는 일이 바로 그런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