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사월이 왔다. 사월 하면 봄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해마다 찾아와 시샘을 부리는 꽃샘추위 속에서도 봄꽃은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수많은 이름 모를 들꽃이나 야생화는 벌써부터 피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시골 학교 울타리 사이나 밭둑에 냉이랑, 꽃다지 그리고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앙증맞게 “나 여기 있어요”하며 실낱같은 미소를 날린다.
순간 재잘거리며 지나가는 3학년 아이들이 “교장선생님 사랑합니다.” 하며 배꼽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아! 이 아이들도 바로 꽃이 아니고 무엇이랴. 교육자가 자연의 꽃에만 눈이 멀어 진정한 내일의 꿈나무인 꽃을 몰라보다니 머리가 긁적여졌다. 이 세상에 무엇보다 귀한 꽃이 사람 꽃이 아니고 무엇이랴!
꽃 중에는 별의 별 꽃이 다 있다. 봄 하면 제일먼저 엄동설한을 이기고 피는 복수초를 들 수 있다. 어느 시인은 ‘눈얼음을 깨고 피어나 결코 그 향기를 팔지 않은 채 하나의 사랑에 행복을 먹음은 덕(德)을 기리고 있어서 이름이 복수초(福壽草)’라 했다. 이런 복수초에게는 그까짓 꽃샘추위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꽃샘추위도 다 까닭이 있는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너무 쉽게 편안히 핀 꽃이 오래 갈 리가 없고 향기가 짙을 리 없으며 열매가 탐스럽지 못할 거라 짐작이 간다. 교육에 몸담은 지 어언 40여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학생들을 너무 성급히 몰아붙인 것 같아 후회가 밀려온다. 또한 너무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환심만 사려고 비뚤어진 길로 가르치진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학생들은 저마다 개성이 다르고 능력도 다르고 태어난 환경도 다르건만 일시에 같은 학습목표만을 향해 가르친 젊은 교사시절이 반성된다. 채송화나 봉숭아꽃은 여름에 피고, 코스모스나 국화꽃은 가을에 피며 심지어 무화과는 꽃도 피지 않으나 달콤한 열매를 맺지 않는가. 이십여 년 전 초등학교 제자들이 반창회를 해 참석한 일이 기억난다. 초등학교시절엔 거의 학력이 부진아에 속하던 아이가 고교 때 장학생이 됐다고 자랑하던 일이 떠오른다. 그땐 그 학생의 눈을 똑바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교육자라면 어느 누구하나 소홀함 없이 개인차를 인정하고 그 학생마다의 적성을 파악해 가르쳐야 한다. 거기다가 인성과 창의를 겸비한 내일의 인재로 기르기 위해선 교육자의 세세한 손길과 사랑과 정열이 있어야 한다.
이른 봄에 아무런 꽃도 없는 화단에 꿀벌들이 잉잉대는 것을 본적 있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화단을 살펴보니 회양목에 눈에 뜨일 듯 말 듯 좁쌀 같은 노란 꽃들이 숨어 있었다. 화려한 꽃만 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도 학력이 우수하다고 반드시 인성이 우수한 것도 아니고, 학력이 낮다고 후에 성공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것을 언제나 교육자는 가슴에 새겨야 한다.
법정스님의 말씀 중 ‘꽃은 우연히 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한 송이의 꽃이 피기 위해서는 수많은 원인과 조건들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꽃들 중 가장 화려한 색깔과 가장 강한 향기를 지닌 꽃은 사막에서 피는 꽃이다. 멀리 있는 벌과 나비 그리고 새들을 불러 모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꽃만 그러할 것인가. 교육이라는 것이 꼭 그 이치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하지 않는가. 서두른다고 될 교육이 아니다. 인내를 가지고 부단히 연구하고 정열을 쏟아 학생들을 가르치는 노고를 감수해야만 한다. 물론교육자가 교육을 잘못시키면 고귀한 한 제자의 인생을 파멸의 길로 이끌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근대 시인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해 본다. “흙에 꽃씨가 미쳤고, 햇볕에 꽃씨가 발악했다. 바람에 꽃잎이 미쳤고, 빗방울에 꽃향기가 폭발했다. 세상에 미치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이어 무명교사 예찬론 한 구절을 되새겨 본다. “젊은이를 올바르게 이끄는 것은 무명의 교사로다. 그가 켜는 수많은 촛불, 그 빛은 후일에 그에게 돌아와 그를 기쁘게 하나니, 이것이야 말로 그가 받는 보상이로다.” 교육자 역시 교육에 미쳐야 내일의 꿈나무인 학생들을 저마다의 향기와 달콤한 꿀로 가득 찬 꽃으로 활짝 피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묵묵히 교육에 전념하는 무명의 교육자들이여! 학생들의 행복한 미래가 그대들의 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