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첫 발령을 받아 가르쳤던 첫 제자들과의 아름다운 만남으로 벅찬 마음을 안고 귀가하는데 그 사이 카카오톡 메시지가 와 있다.
30년 전, 마누라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오지 학교로 첫 발령을 받아 4학년 담임으로 39명의 아이들과 함께 했던 추억이 살아 숨 쉬는 곳, 그 곳에서 함께 웃고 뛰던 그 아이들이 이제는 내가 따라 준 술맛이 기막히게 달아서 술술 넘어간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엔가 30년 전의 그 때로 돌아 간 듯 추억의 앨범들이 한 장 한 장 펼쳐졌다.
“선생님, 전 모든 선생님들이 다 선생님 같은 줄 알았어요.”
나보다 두 뼘이나 더 커서 올려다 볼 수밖에 없던 머리가 희끗희끗한 녀석의 말이다.
“그거 기억나세요. 제가 말을 더듬거리고, 책도 떠듬떠듬 읽는다고 매일 한글 공부에 읽기 연습시키셨잖아요.”
“저희들 모이면 선생님 얘기 많이 해요. 이제 동창회 모임에 선생님도 꼭 초대할게요. 오실 거죠?”
“지난 번 신문에 실렸던 선생님 글,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복사해 다 돌리면서 저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라고 막 자랑했어요.”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면서 제자라기보다는 친구처럼 지나 온 인생의 시간들이 펼쳐지며 그렇게 우리의 행복은 익어갔다. 덕분에 이 녀석들을 만나면 뭐라 불러야하나 잠시 고민에 빠졌던 난 4학년 2반 그 때의 담임으로 이름을 불렀고, 녀석들은 앞으로도 그렇게 불러달라며 한 번 선생님은 영원한 선생님이란다.
한사코 마다하는 날 역까지 동행하고, 내 손을 꼭 잡아주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까지 지켜보다가 다시 한 번 손을 흔들면서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이어질 것이다. 여느 때 같으면 골목길의 휑한 겨울바람에 발걸음을 재촉했으련만 녀석들의 온기가 내 몸을 구석구석 녹여 남은 겨울은 내내 따사로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