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을 유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봤더니 연관 검색어로 ‘교권 침해’, ‘교권 추락’, ‘교권 붕괴’, ‘교권 침해 동영상’, ‘교권 추락 실태’, ‘교권보호법’ 등이 나왔다. 정말 놀랍게도 연관검색어 중에는 긍정적인 단어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생각이 꼬리를 물어 흔히 말하는 교권이란 과연 무엇일까 고민해봤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교사로서 가지는 권위나 권력’이라고 풀이돼 있다. 그렇다면 교사로서 가지는 권위나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학창시절을 떠올려보면 그때는 교권붕괴 내지 추락을 우려하던 수준은 아니었다. 최근에 ‘학생 체벌’이 금지되는 추세지만 그 당시에는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들께 많이도 맞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때 ‘체벌’이 있었기 때문에 교권이 유지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체벌’, ‘징계’는 학생을 지도하는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단은 잘 정비돼야 할 필요는 있지만 결국 이러한 수단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는 교사에게 달려있는 문제다.
나는 교권이 교사가 자신의 학생을 사랑으로 지도하고 관심을 가질 때, 또 인간 대 인간이라는 자연스러운 인간관계 속에서 진심을 다 할 때 우러나온다고 생각한다. 고교 시절 영어 선생님을 가장 좋아했는데 그 선생님은 점심시간이면 아이들과 함께 헐떡이며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더운 여름 아이스크림을 돌려 함께 먹었으며, 특별히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를 편 가르지 않았다. 가끔 팝송을 골라 틀어주며 노래와 함께 영어를 배우는 시간을 만들어줬던, 그런 선생님이었다. 그 당시 들었던 노래 중 아직도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And Garfunkel)’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과 사적으로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지만 ‘험한 물결 위에 다리가 되어~’ 라는 가사처럼 선생님이 우리들을 대하는 태도만으로도 힘이 되는 경험이었다.
물론, 교사들의 노력만으로 하루아침에 교권이 바로 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입시환경과 제도, 학교 교육의 정상화,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사교육 시장 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고 이런 문제들이 교권 추락의 장본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도 매일같이 열심히 수업준비를 하고 항상 학생들을 진심을 다해 사랑으로 지도하는 선생님들이 있기에 그런 선생님들을 응원한다. 이제 한 학교의 고문변호사를 맡으면서 미약하게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이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려 한다. 학교 현장의 선생님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