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굣길 교정에 들어선 아이들을 제일 먼저 허수아비가 맞이하는 학교. 대구용전초등교(교장 박달원) 아이들은 담장 옆, 화단, 교실복도 곳곳에 서있는 300여 구의 허수아비들이 이제는 친구처럼 살갑다. 화장실 앞에서, 수돗가 옆에서, 그리고 미끄럼틀 밑에서도 마주쳐야하니 그림자처럼 느껴질 정도다.
`학생보다 허수아비가 많다'는 농담이 나돌 지경이 된 이유는 바로 이 달 말까지 여는 `용전 팔도 허수아비展' 때문. 99년 9월 개교 때부터 `전통의 멋'을 `校念'으로 이어온 용전초는 해학적인 모습으로 악귀를 쫓는다는 허수아비를 학생, 학부모가 직접 만들어보게 함으로써 학교의 평화를 기원하고 전통 문화를 가꾸고 있다.
"9월쯤 학교에서 전시 일정, 제작방법 등을 안내하면 그때부터 마을 전체가 부산해집니다. 아이들끼리, 집집마다, 심지어 아파트 같은 층 이웃도 짝을 지어 아이디어 회의를 열고 뚝딱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아요"
구창남 교감의 말대로 올해 3년째인 허수아비展은 학교만의 행사가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팔 소매를 걷어붙인 이웃 아저씨와 아줌마들, 그리고 전시회의 단골 관람객인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모처럼 동심으로 돌아간다.
첫 해는 밀짚모자에 짚으로 만든 농촌형 허수아비, 한복이나 평상복 차림의 서민 허수아비가 많았다. 하지만 3년간 머리를 쥐어짜면서 만들고 고치고 부수면서 쌓은 노하우가 올해는 빛을 발해 보는 재미마저 쏠쏠하다. 디스켙으로 눈을 만들고 온 몸을 시디로 장식한 사이버 허수아비, 달걀판으로 겉 몸을 입인 후 은색 락커를 뿌려 만든 은백색의 우주인 허수아비, 검정색 천으로 몸을 두르고 두꺼운 입술에 머리에 실타래를 얹은 흑인 허수아비, 깃털 장식이 요란한 모자를 쓴 인디언추장 허수아비, DDR 허수아비….
헌 옷, 다리가 부러진 안경, 고철, 시디, 바가지 등 폐품만을 이용한 작품들이지만 럭비공처럼 튀는 기발한 상상력이 `팔도'를 뛰어넘어 세계를, 사이버 공간을 소재로 한 멋진 허수아비 친구들을 창조해냈다.
3년째 허수아비를 출품한 이형준(12) 군은 "엄마 아빠랑 자주 의논하고 친구들과 함께 만드는 게 무척 재미있어요. 구름다리 밑에 서 있는 우리 허수아비는 평범한 모습이지만 학교를 지켜주는 수호신이 될 거예요"라며 자랑했다.
"운동장에 서 있어 비라도 맞으면 어쩌나 조바심치는 아이들이 사랑스럽다"는 박달원 교장은 "용전의 허수아비는 학생과 가족, 이웃을 이어주는 훈훈한 전통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