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1986년 9월1일 안양 호원 초등학교 초대 교장으로 부임하신 이은홍 선생님과의 만남은 내 교육 한 평생동안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68년 교대를 졸업하고 교직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21분의 교장 선생님을 모셨지만 유독 그 분을 기억하는 것은 그와의 5년이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체구에 비해 당차고 건강한 분이셨다. 서울 도봉구하고도 방학동에서 경기도 안양까지 그 먼길을 버스에 전철 갈아타시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출근을 하셨다. 새마을운동과 애향단 활동이 한창이었던 그 때, 새벽 5시에 나가보면 그 분은 벌써 골목에 나오셔서 손을 저으며 기다리고 계셨다.
그 분은 또 "교사는 행정가가 아니다"라며 모든 내부 결제를 '낙서식 결제'형식으로 과감하게 바꾸셨다. 그림도 그리고 낙서를 하며 설명을 해서 '뜻이 통하면 OK'라는 것이었다. 신속한 일 처리에 얼마나 신바람이 났던지…. 그 시절 이미 '자연 친화적 교육이론'을 강조, 현장학습과 극기 훈련 등만이 창의력을 신장시킬 수 있다며 '홀리스틱 교육이론'을 도입했던 선구자이기도 했다.
이 교장선생님은 인간다운, 남자다운 의리 또한 남다르셨다. 교사들이 실수로 벌을 받게되면 지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머리를 굽혀 스스로 벌받기를 자청하셨다. 그럼으로써 우리 교사들이 의기양양하게, 창의적으로 교육활동을 맘놓고 수행할 수 있도록 배려하셨다.
2년 전 교단을 떠나신 이은홍 교장선생님. 그 절절하던 기품, 그 빼어난 지혜, 그 다사로운 마음 다 접으시고 지금은 무얼 하고 계십니까. 정든 교단, 시간만 되면 뎅그렁 뎅그렁 울리던 종소리, 가만히 앉아있으면 성큼 뛰어와 품에 안길 것 같은 아이들 다 뿌리치시고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 지요. 그 모두가 보고싶고 그립지 않으십니까. 만나 뵙고 싶습니다. 만나 뵈면 박주산채 일망정 푸짐하게 한 상 차려 대접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밤이 새도록 그때 그 시절 얘기 나누며 긴 밤을 지새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