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아교육 활성화와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단설 국공립유치원 신설이 사립유치원 등의 반발에 부딪혀 난항을 겪고 있다.
학부모들은 우수한 교원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국공립유치원 설립을 바라고 있지만 사립유치원, 어린이집 등이 경영 악화 등을 이유로 거세게 반발, 설립이 곳곳에서 무산되고 있는 것. 유치원 설립 권한을 갖고 있는 교육감들이 표를 의식한 나머지 이들 단체들의 요구에 떠밀려 학부모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호숙 한국국공립유치원연합회 회장은 “강원도의 경우 27개 신청 학교 중 11개를 교육청이 반려하는 등 시도마다 크고 작은 내홍을 겪고 있다”면서 “교육청이 당장 민원이 골치 아프다는 이유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막고 있는 꼴”이라고 토로했다.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학부모의 80%는 자녀를 국공립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기를 희망하고 있으나 지난해 만 3∼5세 대상 유아시설 가운데 공립유치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23%로 OECD국가 평균(72.3%)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누리과정 정착을 위해 현재 164개인 단설유치원이 300개까지는 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정은 교과부 유아교육과 장학관은 “1~2학급 정도로 운영되는 초등병설유치원에서는 3복식 수업까지 하고 있다”면서 “5세 아동위주로 운영되다보니 3~4세 아동들의 적응이 어려워 국공립유치원의 3세 아동 수용률이 3%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수준별로 구성돼 있던 기존 유아교육과정과 달리 누리과정은 연령별로 구성돼 있어 3~5세별 나이에 따라 최소 3학급 이상의 단설 설립이 요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안 장학관은 "연령별로 2학급씩 6학급에 특수학급 3학급을 더해 9학급 정도로 설립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어렵다면 연령별 학급 구성이 가능한 3학급 규모로라도 설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농어촌지역일수록 단설유치원 설립이 더욱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학생 수가 적은 시골 병설유치원에서는 유아기에 반드시 필요한 또래집단 내 상호작용을 충분히 경험할 수 없어 규모가 큰 상급학교 진학 시 학교부적응, 따돌림 등의 원인이 되고 나아가 정상적 사회인으로의 성장에도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이유다.
단설유치원 설립 지연의 피해가 고스란히 학부모와 유아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도 문제다. 3, 4세의 경우 비용부담이 되더라도 사립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누리과정’ 도입 이후 정부가 유아교육 비용 부담을 감안, 사립시설에 15만 원 정도 더 보조하고 있어 비용차가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보육 및 유아학비 지원 예산(만 0~2세 및 만5세 전계층, 만 3~4세 소득하위 70%)이 지자체별로 벌써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하반기 지원금 보조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만약 보조금이 끊기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이를 믿고 사립시설을 선택한 학부모들은 부담을 떠안거나 공립병설유치원 등으로 전학시킬 수밖에 없다.
“병설이면 충분하지 않냐는 주장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초등교육과정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유아에 딱맞는 교육을 하기는 어렵다”는 전호숙 회장은 “유치원 공교육화를 위한 첫걸음인 누리과정이 성공하려면 지역별로 적정 수의 단설유치원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사립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도 반발만 할 게 아니라 제도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권리 등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과부는 이 같은 문제해소를 위해 신설 유치원의 공사립 여부 결정권을 교육감 대신 학부모가 갖도록 하는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8월 시행할 계획이다. 개정안은 시도교육감이 유아수용계획을 수립 시 0세~4세 영유아 보호자를 대상으로 한 ‘유치원 취원 수요조사’가 반드시 반영하고, 조사항목에 유치원 취원 희망 여무, 공사립유치원 및 단병설유치원 선호 수요 등을 포함시켰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공사립 여부 결정에 학부모 의견이 직접 반영되기 때문에 유치원 신설을 둘러싼 갈등을 일정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