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학생들이 폭력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필자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데이비스시 몽고메리 초등교에서 학부모들에게 나눠준 ‘데이비스 통합 학구 지역교육청(Davis Joint Unified School District)’의 정책 자료에서 그 단서를 찾았다.
학생들이 이 지역교육청 학구 내에 입학을 하거나 전입한 경우 교육청은 학교를 통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매뉴얼 형태의 책자를 배포한다. 이 책자는 학생의 학교생활 전반을 안내하고 있는데 필자는 그중에서도 ‘학부모·보호자·학생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매뉴얼에 주목했다.
매뉴얼에는 초․중등학교에서의 ‘징계’에 관한 지침이 포함돼 있다. 이 지침에는 학생의 ‘교칙위반행위(offenses)’ 정도에 따라 학교가 선택할 수 있는 세세한 가이드라인이 소개돼 있다. 예를 들어, 학생이 ‘교실수업을 방해’할 경우, 해당 학생은 교칙위반행위 1단계로서 학생상담, 구두 또는 문서상의 공식적인 사과, 권리 제한, 휴식 중지, 부모 또는 보호자와의 면담 등과 같은 징계를 받을 수 있다. 학생이 계속해서 위반행위를 한다면 ‘권리 제한’이나 ‘휴식중지’ 기간이 길어지거나 ‘수업권 박탈’ 등의 징계를 받게 된다.
이런 권리·책임 매뉴얼과 징계 지침이 주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매뉴얼은 학부모, 보호자, 학생에게 입학하기 전 안내된다. 매뉴얼을 반드시 입학 혹은 전학 전에 나눠주도록 돼 있을 뿐 아니라 학부모의 서명을 꼭 받기 때문에 차후 폭력문제가 발생했을 때 조치에 대한 당사자들의 이견 때문에 학부모 간 갈등이 깊어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학부모와 학생은 미리 매뉴얼의 징계 지침을 확인하고 규칙을 위반했을 시에 어떤 징계를 받을지도 인지해 이를 모두가 준수해야 하는 규칙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둘째, 학교와 교사들이 징계에 대해 학생들에게 일관된 교육을 할 수 있다. 매뉴얼에 기술된 징계 지침이 단계별로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하기 때문에 상황마다 징계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접근할 우려가 없다. 지침이 구체적인 만큼 교사들도 더욱 책임감을 갖고 일관되게 ‘교칙위반행위와 징계’를 학생들에게 지도하고, 규정에 대한 해석의 논란 없이 규정대로 징계를 실행할 수 있다.
셋째, 징계 지침이 포함된 권리·책임 매뉴얼은 매우 인권적이다. 징계(discipline)라는 용어를 접할 때 단순히 ‘벌’이라는 의미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학생은 그들이 한 행위에 대해, 그리고 그 행위가 남에게 끼칠 영향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중략) 다른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통제가 가해질 수도 있다”고 기술된 것에서 보듯이 이 매뉴얼에서는 학생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학생의 보호’라는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즉 징계란 벌이 아니라 ‘행위에 대한 책임’이자 ‘서로를 위한 보호 장구’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인권 의식이다.
현재 교과부, 교육청, 학교에서 학교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놓고 추진 중에 있다. 필자의 바람은 어떤 대책들이 나오든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학교 폭력 문제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교사들은 수업과 학생 생활지도에 전념하고, 학부모는 학교 정책을 신뢰하고 지원하며, 학생은 즐겁게 학교를 다니며 열심히 공부하는 그런 학교 현장이 돼야 한다. 이처럼 당연하고도 일반적인 학교의 모습을 다시 보려면 모두가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는 의식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