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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예의를 가르치지 않는 '학교'가 학교인가

얼마 전 일본 애니메이션 ‘코쿠리쿠 언덕에서’를 볼 기회가 있었다. 1964년 동경 올림픽 직전의 일본 고교생들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이 영화는 지금의 중년 세대들에게 친숙하게 느껴지는 장면들을 담고 있었다. 어른들과 동료들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는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지금의 우리는 그 모든 예의를 거의 상실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학교에서는 인사가 사라져가고 있다. 수업 시작과 더불어 ‘차렷’, ‘경례’ 하는 의식조차 생략하는 학교가 많아졌다. 애국조회가 없어졌으므로 ‘교장 선생님께 경례!’ 하는 절차도 물론 사라졌다. ‘국기에 대한 경례!’는 남아 있지만 예전처럼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는 일도 거의 없다. 인사예절을 생략해도 우리가 선생님을 존경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지킬 수 있는 것일까.

만일 예의를 단지 형식이라 하여 무시하면 결국 그 안에 담긴 정신도 무시하게 된다. 자녀가 집을 나설 때 부모님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한다. 이러한 인사에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들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사를 단지 형식이라 여겨 무시하기 시작한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님을 공경하는 마음도 옅어지게 된다.

예의를 익히지 못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 학생 자신이다. 남을 함부로 대하면 학교생활은 물론이고 사회에 진출해서도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직장에서 가장 중시하는 덕목은 ‘팀워크’다.

오늘날 우리 학생들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예의를 배우지 못하고 있다. 경쟁력을 이유로 공부만 강조하기 때문이다. 학교 분위기도 여기에 한몫 했다. 권위주의를 탈피하고 열린 교육을 지향한다는 이유로 학생들에 대한 통제가 느슨해졌다. 자율을 강조하고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자는 구호 속에 교사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교사의 권위와 예의가 실종된 교실에서 학생들은 과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인간관계의 묘리와 예의를 익히지 못한 학생들이 과연 경쟁력 있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과거 월요일 아침마다 전교생을 모아 놓고 하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는 지루했다. 종례 때 간혹 길게 이어지는 담임선생님의 잔소리도 지루했다. 그러나 분명 교훈을 얻은 적도 있었고 깨닫는 바도 있었다. 교육이란 몸과 마음의 훈련을 동반하는 것으로 때로는 싫은 것도 참고 견디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제 와서 새삼 학교의 권위주의 문화를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권위주의의 타파가 곧 자유방임은 아니지 않겠는가. 개혁이란 좋은 것은 보존하고 나쁜 것은 바꿔나가는 것이지 폐단이 있다고 무조건 기존 것을 없애는 일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요즘의 학교 분위기는 방향을 잘못 잡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치우치는 것을 바로잡는 ‘중용(中庸)’의 자세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예전에 비해 버스나 전철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잘 양보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욕설이나 폭행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보도되고 있다. 기성세대는 과거 학생 시절, 버스에서 자리가 생겨도 잘 앉지 않았다. 그것을 경로(敬老)의 예의로 배우기도 했지만, 청년의 기백이라 할지 젊은이의 기세라 할지 어쨌든 그런 멋을 지니고 있었다. 어쩌면 ‘이제 힘 있는 청년으로 컸으니 나보다 약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내게 있다’는 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이러한 젊은이들의 의식이 자라서 생기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노약자에 대한 연민이 없는 젊은이를 길러내는 교육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 교육의 실패를 보여주는 일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학교의 목표를 재정립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지식으로 무장하여 경쟁력만을 갖춘 사람을 길러낼 것인가, 아니면 예의를 알고 사회성을 지닌 성숙한 사람을 길러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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