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개발원은 최근 2014년부터 중·고등학교의 내신성적을 절대평가제로 전환하는 내용의 학사관리 선진화 정책 시안을 발표했다. 이는 9등급의 상대평가 방식으로 이루어져 오던 고등학교의 학사관리에 엄청난 변화를 야기할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현재 절대평가 방식으로 학사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중학교에서도 과목별 최소이수수준을 설정해 이에 미달할 경우 재이수제(F)를 도입하겠다고 계획하고 있으니, 이 정책이 실제로 시행되면 우리나라의 전체 중·고교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중·고등학교의 학생평가를 학생들이 해당 교과에서 얼마나 배웠는지 학생들의 성취를 기준으로 하는 ‘절대평가’로 전환하겠다는 발표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상대적인 서열에 의해 학생들의 성취를 평가하는 것은 다른 국가에서도 유례없는 일일뿐 아니라, 학생들 간의 불필요한 경쟁을 부추기면서 정작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핵심 내용을 학생들이 얼마나 배웠는지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지도 못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이러한 상대평가는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주요 덕목인 협동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 함께 살아가는 지혜 등의 인성과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에는 오히려 역행하는, 따라서 상당히 비교육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절대평가로 학생들을 평가한다는 것 그 자체가 가지는 교육적 기능에 원칙적으로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이다. 지난 2005년에 내신 9등급제를 도입했을 때에는 내신 부풀리기로 인한 고교내신에 대한 불신 등 나름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 필자는 지인과 중·고교 절대평가 시행에 대해 대화한 적이 있는데, 상대방은 절대평가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러면 교사가 맘대로 성적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다면 누구에게나 다 좋은 성적을 주려고 할테고, 그러면 고교 내신의 변별력이 없어질 테니 대학은 자체선발시험을 강화하려고 하지 않을까요?”하는 것이었다.
물론 절대평가가 교사 마음대로 임의의 기준을 적용해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앞서 소개한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교사의 평가 결과에 대한 신뢰와 교사의 학생평가 전문성을 사회가 인정해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게 절대평가제 성공의 주요 관건이 될 것이다. 교사의 평가전문성을 신장하기 위한 방안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교사들의 평가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기에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고 이를 함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의 평가전문성 함양을 위한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연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특히 이러한 연수가 명목상이 아닌 실질적인 연수가 되도록 치밀한 준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다양한 교수·학습 자료, 평가방법 및 예시문항 등을 교과부와 교육청 수준에서 개발해 보급하고, 이들의 활용을 지도하기 위한 전담부서를 교육청 단위로 설치해 지원해야 할 것이다.
현재 e-평가문제은행 등을 통해 교사들에게 평가문항이 제공되고 있긴 하만 그 활용률이 미흡하고 성취기준 중심이라기보다 교과내용 중심이라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2009 개정교육과정 중심의 다양한 평가방법과 질 높은 예시문항을 개발해 교사들에게 제공하고 적극적으로 그 활용을 홍보해야 한다.
또한, 학생평가에 대한 의사소통 기회가 정례화·체계화되어야 한다. 교육평가는 학생들에게 어떤 부분을 좀 더 노력해야 하는 지 교정적 정보를 줄뿐만 아니라 결과에 대해 어느 정도 예측가능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기 초에 어떤 형식과 어떤 기준에 의해 평가가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학기 중에도 학생에 대한 평가 결과를 중심으로 교사, 학생, 학부모 간 상호의사소통 기회를 정례화하고 이를 위한 체계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이의 제기에 대한 우려 때문에 수행평가의 실시나 평가기준 및 결과의 공개를 꺼려하는 교사들도 있을 수 있으나, 교사의 평가에 대한 재량권과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 주되 평가 방법과 결과(평가기준이나 채점기준 포함)를 공개하도록 하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의사소통을 정례화한다면 학생평가의 공정성 역시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교사의 평가결과에 대해 학생이나 학부모가 이의를 제기했을 때, 자신의 양심과 전문적 기준에 의해 공정하게 평가한 교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
이외에도 학교 내외에서 동일 교과 교사들 중심의 학습조직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특히 같은 학교 내에 동일 학년, 동일 교과를 가르치는 교사들끼리 자주 만나서 성취기준 및 평가기준에 대한 의견을 자주 교환함으로써 자생적으로 전문성을 제고해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사들이 학생 평가를 포함해서 효과적인 수업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학교 환경을 조성해나가야 한다. 교사들의 행정 부담을 위한 행정지원인력, 학생 생활지도, 진로상담을 위한 전문적 인력을 확충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