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을 앞둔 요즘, 아이들과의 추억을 정리하며 만감에 사로잡힌다. 이제 곧 생동하는 초록의 봄이 오겠지만 지난 한 해 울고 웃으며 함께 한 아이들과 헤어진다는 사실에 역설적인 슬픔에 빠지게 된다. 슬픔 속에 하나 둘 정리를 하던 중, 경찰청의 협조 공문이 도착했다. 폭력 졸업식에 대한 강력 대응과 학교의 자정을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석별의 정을 나누고, 새로운 미래를 다짐하는 신성한 졸업식이 언제부터 이렇게 변질되고 우려의 대상이 되었는지 안타까운 마음에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언론에 비친 작년의 졸업식 모습을 떠올려 보면 과연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살벌한 폭력에 얼룩져 있었다. 이번 졸업식은 경찰과 학교의 단속으로 별일 없이 지나갈 수는 있겠지만 졸업에 대해 근본적으로 원점에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폭력 졸업식의 문제와 해법은 복잡한 맥락 속에서 제시될 수 있겠지만 필자는 아이들의 심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길거리에서 옷을 벗기고, 얼차려를 주고 사진으로 찍는 행위는 그동안 억눌려 있던 감정의 폭발로도 볼 수 있다. 입시 위주의 숨 막히는 경쟁 속에서 일탈을 행함으로써 학교에서 벗어났다는 기분을 과잉되게 표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심층적으로 보면 폭력을 행한다는 것은 과시의 욕구에서 출발한다. 다른 이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들은 강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받으려 한다.
이러한 행동의 이면에는 획일화된 졸업식의 문제도 분명 크게 자리한다. 아이들 모두의 잔치인 졸업식에서 과연 아이들 하나하나가 주인공으로 대접받는가? 많은 졸업식에서 형식적인 식순과 각종 단체장의 표창이 행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우수한 아이들이 학교를 대표하여 표창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연단 아래에서 박수를 치고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떤 기분이겠는가? 학교에 대한 애교심,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희박해지는 상황에서 주목받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일탈하는 것이다.
폭력을 단속하기보다는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졸업식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함께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훈훈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졸업생들뿐만 아니라 재학생 모두가 함께하며 선후배의 돈독한 정을 나누고 사회에 진출한 선배들도 함께하는 자리라면 학교의 전통인 교복을 찢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공연과 함께하는 졸업식, 학사모를 쓰고 품위 있게 하는 졸업식 등 여러 방법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졸업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졸업(卒業)은 해당 학교 교육과정을 규정에 맞게 이수하고 사정 과정을 거쳐 상급 단계의 학교로 진학하거나 학업을 마치는 일로 정의된다. 학교의 진학이 지금처럼 쉽지 않던 시절의 졸업식은 영광의 자리이며 동시에 눈물로 함께하는 이별의 자리였다. 그때와 같지는 않겠지만 생의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폭력으로 얼룩진 졸업은 이제 졸업해야 한다. 졸업은 마치 글의 마침표와 같은 존재이다. 한 문장은 끝나지만, 인생이라는 글 전체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더 나은 다음 문장을 위한 맺음의 순간으로 기억하길 바라며, 졸업을 하는 모든 주인공에게 축하와 격려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