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스포츠 강국. 베이징올림픽 종합 7위가 말해준다. 아쉽지만 거기까지다. 체격은 커졌는데 체력은 오히려 떨어졌다는 사실은 이제 구문이다. 체육 수업은 줄었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운동장에서 공차는 모습 보기가 쉽지 않다. 체육 강국의 바탕이 된 엘리트체육도 학습권 보장, 폭력 문제 등에서 그다지 자유로워 지지 못했다. 많은 대책들이 쏟아지고 토론회가 열리지만 속 시원히 해결된 것도 없다. 학교 현장은 급진적인 발표에 급급하기보다 차분하고 단계적인 계획들이 시행되기를 원하고 있다. 이원희 교총회장, 유도부문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 선수, 유병렬 한국체대 교수가 학교체육활성화를 위한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원희 회장=학교체육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여전히 걱정이 동반돼 있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의 체격은 비대해졌지만 체력은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는 뉴스가 꾸준히 보도되고 있는데요.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 선수와 유병렬 교수님을 모시고 우리 학교체육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한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선 요즘 청소년들의 체육활동 부족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병렬 교수=교육과정이 바뀌면서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한 주에 3시간에서 2시간으로, 고등학교 2ㆍ3학년의 경우 필수에서 선택으로 체육 수업에 대한 할당량 자체가 축소됐고 여학생의 경우 거의 체육수업을 선택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체육과목의 시수 감소 또는 전무의 형태로 변질 되어가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시설적인 측면에서도 신설된 학교의 경우는 운동장이 몹시 협소하여 직선이 50m도 채 안 나오는 학교도 있다고 하니 체육 수업에 대한 제한이 많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체육 수업 성적을 대학입시에 반영하지 않고 평가 또한 상중하로 단계적 평가로 이뤄지고 있는 것도 체육수업 위축의 한 요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교과목 선택권의 20%가 교장에게 위임되면서 학교 시간표에 주요 입시과목의 자리만이 더욱 넓어지고 있는 추세이고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여 집니다.
이원희 선수=직접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성장하는 시기에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입시위주의 교육으로는 청소년들의 신체적·정서적 발달에 많은 장애가 있다는 생각도 그동안 꾸준히 해왔습니다. 영화를 보면 체육과목이나 체육교사에 대한 대접이 형편없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런 현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선진국에서는 체육의 중요성이 굉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체육이나 봉사 점수가 없어서 미국 대학에 실패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인성, 봉사, 체력, 학력 등을 종합해서 보아야 하는데 오로지 학업점수만 평가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원희 회장=맞습니다. 학교 내에서의 체육활동은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와 사회성 배양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학교체육 활성화가 여러 청소년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을텐데 말이죠. 교육과정 속에서 어떤 변화가 모색되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유병렬 교수=과거 체육시간에는 다양한 팀별 대항스포츠를 실시하면서 학생들이 교과서적인 지식 외의 것들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축구, 농구, 발야구 등의 경기를 서로 펼침으로써 협동심 향상 및 사회성 배양 등의 효과를 주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팀별 대항스포츠를 통해서 학생들이 성적을 뒤로 하고 함께 참여하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협력하게 됩니다. 하지만 현 대학입시는 개인별 내신 성적만이 그 학생을 평가하는 잣대로 사용되고 있고 최근에는 체육시설의 열악한 환경ㆍ입시제도의 변화 등으로 체육수업이 개인위주의 수업으로 바뀌었습니다.
각각의 개인과 각각의 집단이 상호간 협력하고 보완함으로써 건강한 사회가 유지되듯이 체육시간도 집단 운동을 통해 학생들에게 사회성을 길러줄 수 있어야 합니다. 팀별 경기에서 전략과 전술을 위한 SWOT 분석(강점(Strength), 약점(Weakness), 기회(Opportunity), 위협(Threat))을 거치면서 서로가 서로를 돕고 의지하며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짜내는 과정들이 체육수업에서 길러지는 사회성과 창의성을 높이는 교육효과라고 생각합니다.
이원희 회장=이 선수는 모교에서 1일교사로 나서 후배들에게 강의를 하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후배들에게 체육활동을 권장하는 얘기도 했나요?
이원희 선수=네. 오래됐지만 그런 내용들을 많이 들려준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 경험에서도 병의 원인이 운동부족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인식들이 많이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돈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운동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말이죠.
이원희 회장=지금까지 일반학생들의 체육활동에 대해 얘기를 나눠봤는데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볼 때 엘리트체육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 선수도 엘리트 체육을 통해 성장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간 엘리트 체육은 학습 부족이나 가혹 행위 등 문제점을 노출한 것도 사실입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유병렬 교수=먼저 학생선수의 학습권부터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정부는 ‘2006 학교체육 기본 방향’에서 국민체육진흥법 제9조 및 시행령 제15조에 학생선수의 교육에 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선 학교에서는 이를 소홀히 하고 여전히 운동하는 선수가 몸만 잘 쓰면 되지 무슨 공부냐 하는 식으로 학생들의 학업을 제대로 신경써주지 않고 있습니다.
학교운동부의 합숙소 운영도 그리 옳은 방향으로만 되어가고 있지는 않습니다. 2008년 12월 교육과학기술부의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 7154개의 운동부에, 1100개의 합숙소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합숙소에서 생활하는 학생선수들이 학교생활, 선후배문화, 가족과의 교류단절 등으로 인하여 인격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하고 있고, 합숙소 시설의 취약함과 선후배간 폭력 등의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운동부 지도자의 자질 부족 및 제대로 되지 못한 처우, 출산율 저하, 운동선수 기피현상으로 인해 전체 학생선수의 감소 등의 문제 등이 있다고 봅니다.
운동을 하면서 학업도 동반되는 전반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까지 교육과학기술부와 국회의원, 그리고 각종 세미나에서 이와 관련하여 많은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러한 대안들과 더불어 현장의 목소리 또한 함께 반영돼야 합니다. 그리고 운동부 활성화를 위한 모범 사례 및 연구 사례 등의 시스템을 상시 가동하고 잘 활용하여 천편일률적인 일변도의 방법보다는 단계적으로 세밀한 부분들이 잘 확인되고 배려되어 변화의 과정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희생되는 학생선수가 최소화되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선은 학업성적에 관련해 최저학력제의 도입과 함께 운동부 학생들만의 학급운영(수준별 학급)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또 합숙소를 비롯한 지도자, 운동부 운영의 경제적 개선방안 등의 바람직한 사례들을 권장하고 표본화해서 다양한 처방들이 강구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원희 선수=개인차는 있지만 운동 잘하는 사람이 공부도 잘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센스가 없으면 승리하기 힘들다는 얘깁니다. 운동선수들은 집념이 강한데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경우가 오히려 많다고 생각됩니다. 필요성만 느끼게 된다면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분위기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우리나라는 너무 극단적인 대처를 하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으면 바로 없애버리자고 합니다. 정작 운동선수의 처지는 다른데 말이죠. 잘못된 점은 보완을 해야지 하루아침에 뒤엎어 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원희 회장=점진적, 단계적으로 가야지 포퓰리즘에 휩싸여 싹을 자르면 안된다는 말씀이시군요. 유 교수님, 선수를 보호하면서도 엘리트 체육을 활성화하기 위한 개선 방안이 없을까요?
유병렬 교수=정부는 2009년 2월에 최저학력제 도입과 더불어 초등ㆍ중학교에서의 합숙훈련을 전면 금지토록 했습니다. 하지만 축구 주말리그제를 시행하면서 현장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나타났고 현실성에서 많이 떨어진다는 여론이 비등했습니다. 주말리그제가 타 종목으로까지 도입하기 위해서는 문제점 보완과 세부적인 대안이 시급히 강구돼야 할 것입니다. 초ㆍ중학교에서의 합숙훈련 전면금지 또한 상당한 시행착오와 함께 현장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입니다, 학교 측은 물론 학부모ㆍ학생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는 피드백의 시스템을 반복해야 점진적으로 정착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원희 선수=엘리트 체육과 관련된 토론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참석자들끼리 탁상공론만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대책으로 만든 기준이라는 것이 일부 인기 구기종목 위주인데 현실은 비인기 종목이 더 많고 다양한데 거기에 대한 기준은 없습니다. 엘리트 체육이라 해도 20% 정도의 엘리트들과 나머지 선수로 구성이 되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환경도 어렵고 공부에 취미가 없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도 운동부의 기능이라는 것을 현장에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고려없이 무조건 획일적인 기준을 들이대고 있는데 현장도 모르면서 정책을 쏟아내는 일은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원희 회장=운동부의 기숙환경이나 시설 환경의 개선 목소리도 많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잔디운동장 보급이나 조명 설치 등 학교의 체육시설개선이 많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도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에 대한 의견도 말씀해 주십시오.
유병렬 교수=운동장 없는 학교가 생겨나게 된 역사적 배경을 보면 1997년 당시 서울시내 학교의 60%가 100m 직선 주로운동장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학급당 50명을 육박하는 과밀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를 40명으로 축소시켜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이슈였습니다. 실제로 한 학교당 총 면적이 최소 3500평은 되어야 했고 그 중 2000평의 공간은 운동장으로 쓰여야 했는데 당시 상황에서 그 기준을 맞추기에 가능한 학교가 불가능한 학교보다 그 수가 훨씬 적었기 때문에 체육장 기준 면적을 자율화했고 오늘의 체육장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현실적인 여건에 맞춰 몇 가지 제안을 하자면 먼저 초ㆍ중ㆍ고교에서 단계별 체육교과에 대한 이론적ㆍ현실적 연구를 통해서 신체 발달 단계별 체육교과의 제시가 선행돼야 한다고 봅니다. 또 교육과학기술부의 체육장 기준 면적(제5조제2항)을 점차적으로 늘려 나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미국ㆍ스위스 등과 같이 학교시설이나 타 시설을 공유할 수 있는 행정적ㆍ재정적 뒷받침이 마련된다면 시설의 공유 또는 위탁교육 나아가 선택적 체육수업 등이 가능하게 되면서 학생들이 훨씬 다양한 양질의 체육수업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원희 회장=장시간 고생하셨습니다. 교사나 학부모님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원희 선수=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학부모님들이 운동의 중요성을 꼭 느끼셔서 우리 학생들이 학업과 스포츠를 골고루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고른 심성과 몸을 갖춘 학생으로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유병렬 교수=현재 입시 위주의 학교 분위기로 인하여 의기소침해져 있는 체육 담당 선생님들의 활기를 다시 찾게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체육교과목 선생님들께서는 이런 문제들을 방관하시지만 말고 체육수업 시간의 확대와 체육교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전환을 위해 개인별ㆍ집단별로 지속적으로 효과적인 교육 방침과 구체적인 수업 내용들을 제시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학부모님들께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체육수업의 목표가 단지 신체의 건강 유지 및 발육ㆍ발달에만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중ㆍ고등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현재는 물론 장래의 평생 동안 기초가 될 신체적 여가 능력을 배워야 할 중요한 연령대입니다. 심신의 조화로운 발달과 더불어 사회성ㆍ준법정신ㆍ창의성 교육에 대하여 체육수업이 얼마만큼 중요한지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사례에서 확실하게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을 체육활동을 꼭 참여하게 하는 적극적인 지도에 부모님들께서 손수 앞장서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