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온통 어지럽고 고통스러워서 무언가 돌파구를 찾기 위한 결단이 있어야 할 때 말을 할 만한 사람들이 나서서 고심 끝에 한 마디 하는 일을 시국선언이라고 한다. 우리의 불행했던 현대사에서 각계의 지도자들이 보여주었던 시국선언 모습은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소중한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또는 국가원수를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인정사정없이 끌려가곤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대의 시국선언은 자유가 목마른 국민들에게 한 모금 청량음료였고 존경과 감사의 대명사였다.
목 놓아 정의를 외치다가 군홧발에 짓밟히는 제자들을 지켜보던 교수들이 성명을 발표하고 플래카드를 든 채 거리로 나왔을 때 온 국민은 숙연한 자세로 이 분들에게 경의를 표했고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정권을 쥔 사람들도 이 위대한 지식인들의 거사에 속수무책일 만큼 중후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주로 신뢰받던 종교지도자들은 시국선언 후 당당한 자세로 몸싸움을 벌이면서 감옥으로 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 행동하는 지성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은 거의 절대적인 수준이었다.
그 시국선언이 요새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 같다. 무슨 대단한 내용이 담겨있나 싶어 들여다보니 그저 현 정부의 정책에 반대한다는 입장표명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이유도 명분도 분명하지 않고 시국선언을 해야 할 만큼 다급성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세간의 주의를 모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대할 만한 위력도 있어 보이지 않는데 시국선언이 연이어 나오는 것은 참 기이한 일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더 이상 1980년대 이전의 상황에 있지 않다. 소위 시국선언 안 해도 이름 없는 국민들일 망정 알 만한 것은 죄다 알고 있고 또 판단하고 있다. 이 시대상황에서 일부 대학교수들이나 종교인들 또는 시민단체가 국민들을 계몽하려 한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작금의 소위 시국선언은 정확하게 말해 일부 인사들의 입장표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정권은 군사정부나 독재정권이 아니다. 국민들의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다시 말하면 민의의 뒷받침을 받아 정당하게 구성된 정부이다. 만약 현 정부의 정책이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다음번 대통령 선거와 총선거에서 국민들이 정권을 다시 바꾸게 될 것이다.
지금은 시국선언을 연달아 내놓아야 할 만큼 국가적으로 긴급한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각자가 특히 책임이 크고 지도적인 자리를 점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바 임무를 열심히 수행해야 할 때다. 대학의 교수들은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을 유능한 인재로 길러서 사회에 진출시키고 종교인들은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정성을 다해 사회구원에 힘써야 할 때다. 시민단체들도 정치싸움에 끼어들지 말고 공직자를 비롯한 책임 있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동시에, 책임과 배려와 질서의 덕목들이 우리 사회에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건전한 캠페인을 주도해야 할 때인 것이다.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맡기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으면 한다. 말싸움을 하던 몸싸움을 하던 싸움은 국민을 대신해서 의원들이 국회 안에서 해야 옳다. 대의 민주정치 제대로 하라고 뽑아준 의원들이 왜 거리정치 광장정치에 빠져서는 안 된다.
많은 국민들이 신문과 방송을 주시하고 있고 국회방송도 자주 보고 있는 것이다. 초중등 교사들의 시국선언은 성장세대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우려되는 바가 더욱 크다. 학생들까지 소위 시국선언에 동참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소식에 말문이 막힐 뿐이다. 교육은 정치성이 개재된 운동이나 투쟁으로부터 얼마간 떨어져 있어야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 시대에 교육자들이 정치적 사고에 열중하고 편향된 시각으로 학생들을 유도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매우 유감스럽고 걱정되는 일일 것이다.
어느 누구든 자신들의 입장을 물리적인 방법으로 관철하고 국민들을 계몽하려 드는 오만한 시대착오를 범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무슨 소리를 해도 잡아갈 일은 없으니까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할 수는 있는 일이지만 지도적인 위치에 있음을 자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좀 더 묵직하고 신중한 자세를 견지해야 옳을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