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는 외면한 채 실언에 꼬투리를 잡아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사실 온당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발언의 너머 교육현장을 정확하게 꿰뚫지 못하는 듯한 우려할 만한 생각의 저변이다.
이돈희 장관님 발언의 전체적 의미는 아마 안이한 생각으로 열심히 연구하지 않은 교사를 퇴출시켜야 한다는 것. 또 교사는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관련해 조선일보 기자도 "할말을 제대로 했다. 교단을 개혁하라"는 일반인들의 반응을 곁들이면서 교사들은 자신을 냉철히 한번 돌아보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장관님이나 조선일보 기자의 논조는 지극히 기업식 경쟁 논리에 가깝다. 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교사의 연구-교수활동 능력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인데 이는 최소한 대학에는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중등학교 교육 경쟁력의 경우는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 없다.
바깥에서 보면 교직사회는 정적이고 무사태평한 것처럼 어쩌면 한심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마치 경쟁력이 도무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왜냐하면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새로움도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주변환경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또 당장 돈이 되는 경쟁력 있는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당장 망한다. 굴곡과 변화가 심할 수밖에 없다. 교육논리는 당장 손해볼 것 같은 곳에도 투자하는 것은 그만큼 장기적 안목으로 보아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는 가정과 같은 곳이다.
가정에서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은 매일 반복되는 그런 것이지만 아무도 이 일을 무의미하다거나 무사안일이라고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매일 이렇게 조금씩 커 가기 때문이다. 중등학교는 지식만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고 자라나는 아이들을 양육하는 곳이다. 따라서 교육 경쟁력의 진정한 의미는 연구력, 교수활동 같은 인지적 능력보다 오히려 정서적 자질, 사랑과 인내와 대화와 개방적 태도의 함양이다. 교육개혁의 핵심은 교사의 자질문제보다 현실을 왜곡하는, 그래서 교육 파산을 가져오는 제도적 모순과 모순된 제도를 재생산해 내는 사람들의 사고 전환에 있다.
교사들은 자신을 냉철히 한번 되돌아보라고 권하는 기자에게 학교에 가서 교육 현장을 관찰해보라고 권하고 싶어한다. 인문계 고교에 가보라. 얼마나 바쁘게 시정이 이루어지는가? 학교교사는 놀고 먹는, 적당히 근무시간만 때우는 사람들이 아니다.
학부모들은 대학 진학을 위해서 더 수업을 해달라고 조르고, 예의 없는 철부지들은 작은 꾸중에도 체벌했다고 경찰에 고발하고, 신문 볼 시간도 없다. 조종례, 학생상담, 학생관리, 학부모 상담, 장부정리, 업무처리 등 업무는 또 얼마나 많은지, 어디 하나 교육적 자율권이 있는가 보라.
이러 열악한 조건에도 천차만별의 수준을 가지고 있는 많은 학생들을 한 교실에 두고 직무에 충실하는 교사가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학교에서 성의 없이 적당히 시간 때우기식으로 수업하는 교사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싫은 감정을 드러내고 수업을 거부하기도 하며 심지어 학생들에게 왕따까지 당하는 현실에서 수업준비에 소홀하기는 더 힘들다.
이 시점에서 요구되는 것은 비난과 흥분이 아니라 따뜻한 눈으로 교육현실의 핵심적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해 보는 것일 것이다.